문화스포츠 에디터 김장겸 <문화방송>(MBC) 사장의 해임안 의결 소식을 들었을 때 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는 문화방송 소속이 아니다. 지난해 회사를 떠났다. 책임자급 상사의 무리한 지시와 인격모독 수준의 폭언이 반복되며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고 약 없이 자는 날이 점점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몇년을 준비했고, 입사한 뒤에는 엠비시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십여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기는 쉽지 않았다.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그만두자고 마음먹었다가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마음속 뒤집기를 몇달 하더니 결국 퇴사했다. 그가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끝이 보이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왜 아니겠나. 2012년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를 내걸고 시작했던 170일간의 최장 파업을 사실상 빈손으로 마무리해야 했던 구성원들에게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 싸움의 실패가 무서운 건 이긴 편의 보복 때문만은 아니다. 진 편이 짊어지게 되는 내상이 바닥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깊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서울광장 파업콘서트에서 2014년 회사를 떠난 박혜진 아나운서는 파업 실패 뒤 구성원들이 느꼈던 무력감에 대해 토로했다. 이 무력감을 자양분 삼아 경영진은 조금이라도 보도와 인사 공정성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구성원들을 부당전보와 징계로 몰아세웠고, 구성원 개인들은 위축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이 김 사장 해임에 이르기까지 무려 5년, 이 모든 사달의 출발점이 된 김재철 사장의 취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7년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먹고사는 데 치이고 쫓겨 “쏜살같이 지나갔다”고 쉽게 말할 5년의 시간이 가지는 그 큰 덩어리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은 최장기 해직기자인 이용마 기자일 것이다. 2012년 파업 당시 노조 홍보국장이던 그는 파업 100일 기념 <한겨레> 좌담기사 사진에서 김민식 피디(당시 노조 부위원장)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직후였지만 혈색 좋은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낙관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2016년 그는 복막암 판정을 받았다. 힘겨운 투병생활 중에도 문화방송 정상화를 위한 인터뷰와 발언의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얼굴은 볼 때마다 수척해졌다. 야위어가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한겨레> 미디어담당 기자와 담당 부서장인 나까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이었으니 이번에 다시 파업에 나선 동료들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친구가 회사를 떠난 직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가 시작됐고 탄핵정국이 열렸다. 친구에게, 그리고 많은 문화방송 직원에게 보이지 않던 그 끝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5년, 아니 7년의 시간이 야금야금 무너뜨린 공영방송의 폐허 위에서 문화방송은 뼈아팠던 실패의 이야기를 다시 쓰게 됐다. 친구는 어쩌면 ‘간발의 차이’였을 자신의 다른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기쁨과 부러움, 착잡함이 뒤섞인 소회를 되새김질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15일 이른바 ‘유배지’로 부당 전보됐던 구성원들이 본사로 출근투쟁을 시작했다. 그중에는 2014년 이전한 상암동 사옥으로 처음 출근한 이들도 있다. 마치 새 직장 문을 여는 듯한 낯선 기분이었다는 고백과 이들에게 가지고 있던 본사 직원들의 미안한 마음의 고백이 빚은 온기가 오랜만에 문화방송 사무실을 채웠다고 기사는 전한다. 큰 산은 넘었지만 “황무지”에 무너진 공영방송 정상화를 다시 세우는 길은 지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동료들이 서로를 든든해하며 5년의 시간이 남긴 내상을 치유하는 것에서 정상화의 첫 삽은 떠졌다.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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