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자영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이재명

등록 2018-01-28 18:02수정 2018-01-28 18:57

이재명
디지털 에디터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는 수도권 신도시에서 스무명 남짓 직원을 둘 정도로 제법 규모 있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음식업 5곳 가운데 4곳 이상이 5년 안에 문을 닫는 현실에서 15년 이상을 꿋꿋하게 버텨왔다. 그런 친구가 대뜸 “이제 자영업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자 작정한 듯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열변을 토해냈다.

가장 큰 고충은 직원 구하기란다. 한국인들, 특히 젊은 세대는 손님에게 음식을 나르고 응대하는 힘든 일을 더는 하지 않으려 한다. 식당이 문을 연 2001년만 해도 직원 대부분이 40대 한국 여성이었다. 하나둘 대형마트로 떠난 빈자리는 20~30대 중국동포 여성이 채워갔다. 젊은 중국동포 여성들도 오래지 않아 더 편한 일자리를 찾아 옮겨갔다. 이젠 50대 중국동포 여성만 남았다. 그새 105만원이던 월급은 240만원으로 올랐고, 없던 퇴직금도 생겨났다. 한달에 이틀이던 직원들 휴가는 나흘이 됐다. 그래도 직원들은 수시로 빠져나가고 그 공백을 메우느라 진저리가 난다는 것이다.

임대료는 그야말로 ‘헉’ 소리가 나오는 수준이다. 건물주한테 주는 돈이 매달 720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뛰었다. 2008년을 전후로 수도권 부동산값이 폭등한 게 결정타였다고 한다. 2000년대 초 평당 100만원이던 주변 땅값은 2800만원까지 치솟은 뒤 요지부동이다. “해마다 임대료 협상을 할 때면 피가 마른다. 건물주는 앉아서 수십억원을 벌었는데도 대형교회에 내는 헌금에만 온정을 베푼다”고 했다.

달라진 풍경은 식당 계산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느새 식당 안 곳곳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과 컴퓨터 계산시스템, 카드 결제 단말기 등이 빼곡히 들어섰다. 족히 수백만원은 넘어 보이는 기기들로, 신용카드 밴사가 ‘공짜’로 설치해준 것이다. 결제 전표를 신용카드사별로 분류·수거하고 대신 카드사에서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밴사가 자선사업가일 리 없다. 소득공제를 미끼로, 탈세 방지를 목표로 신용카드 결제가 활성화되면서 지금은 음식값 결제의 90% 이상이 카드로 이뤄진다. 카드사에 내는 한해 수수료는 4천만원이란다. 세금은 3배 늘었다. 처음 분기당 800만원을 내던 부가가치세는 2200만원으로 뛰었다.

친구는 같은 기간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값을 2만9천원에서 4만2천원으로 1.5배 올렸다. “식재료·기름 값 인상분까지 고려하면 두배를 올려도 부족하지만 주변 식당이나 줄어드는 손님들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주5일 노동’이 정착되면서 쉬는 날엔 지방·국외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많아졌다. 그 여파로 주말이나 연휴·명절이 되면 손님도 급속하게 줄었다.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에 의존하는 고용 비중은 25%를 넘어선다. “임대료·인건비·세금·수수료의 압박을 버텨내면서 각자도생해온 게 자영업의 역사였다. 그런데도 지금껏 어떤 정부도 우리 처지를 헤아려주지 않았다”고 섭섭함을 내비쳤다. 올해 이뤄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현실 인식도 도마에 올렸다. 그중 반박할 수 없었던 부분은 “최저임금 인상이 소비로 이어져 업주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정부 주장에 대한 반론이었다. “어른 세대의 부동산 투기가 초래한 미친 월세는 젊은 세대에게 임금 몇푼 더 준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최저임금 올려도 그 인상분은 집세 등으로 부동산 부자들한테 돌아가지 편의점이나 동네 식당에서 새우깡 하나, 김치찌개 한끼 더 사먹는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청년들도 요즘은 그 돈을 해외여행에 가장 먼저 쓴다.”

mis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1.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달려야 한다, 나이 들어 엉덩이 처지기 싫으면 [강석기의 과학풍경] 2.

달려야 한다, 나이 들어 엉덩이 처지기 싫으면 [강석기의 과학풍경]

비상계엄 환영했던 부끄러운 과거 반복하려는가 [아침햇발] 3.

비상계엄 환영했던 부끄러운 과거 반복하려는가 [아침햇발]

독재자를 도와주는 6가지 유형 [유레카] 4.

독재자를 도와주는 6가지 유형 [유레카]

한국 경제의 숙제, 윤석열 단죄 먼저 [한겨레 프리즘] 5.

한국 경제의 숙제, 윤석열 단죄 먼저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