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에디터 ‘임은정 검사를 지지하지만 서지현 검사는 지지하지 않는다.’ 며칠 전 한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보다가 이런 댓글을 봤다. 왜? 라는 궁금증으로 백개 가까이 이어진 댓글과 관련 게시글들을 다 읽어봤다. 열에 아홉은 비슷한 내용이었다.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커뮤니티였기 때문에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서지현 검사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고 하는 이유 중에는 서 검사의 변호사로 나섰던 김재련 변호사가 ‘화해·치유재단’ 이사로 활동했던 이력 때문에 사퇴를 하면서 서 검사에게 실망했다는 게 많았다. 글들은 이런 인물을 변호사로 쓴 서 검사의 사상이 의심된다며 가해자를 처벌하는 정의 실현이 아니라 인사 불이익을 해결하려는 개인의 이기적 마음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는 게 아니냐를 거쳐 근속일수 등에서 불이익도 아니더라는 막말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기시감이 들었다. 내부고발자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시나리오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고 대의명분을 끌어들인다라는. 결국 서지현 검사가 박상기 법무장관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공개하면서 이런 비난 여론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러나 내부고발자의 고발 내용보다 고발 당사자의 순수함과 무결점에 집중하는 시선들에 서 검사는 한장의 포트폴리오를 추가했을 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자기증명의 시험대가 남아 있을지는 본인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미투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을 폭로한 배우 중 하나는 귀네스 팰트로였다. 촉망받던 신인배우 시절 와인스틴에게 당했던 성추행을 고발한 팰트로의 톱스타 등극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게 와인스틴이었다. 팰트로는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1999년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탁월한 경쟁자들을 물리친 팰트로의 수상이 적절했는가가 입방아에 올랐고, 거물 와인스틴의 영향력이 수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거라고 많은 이들이 짐작했다. 시상식에서 팰트로는 기쁜 얼굴로 와인스틴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 모든 게 생중계되었고 지금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상으로 떠돈다. 이후 부와 인기와 명예, 모든 걸 거머쥔 팰트로가 와인스틴의 성추행 이력을 폭로했을 때 아무도 그녀의 이러한 과거를 미투운동과 연관시키지 않았다. 서지현 검사에 대해 쏟아졌던 냉혹한 잣대를 팰트로에게 들이댄다면 팰트로는 미투운동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성추행을 당하고도 성공을 위해 권력을 쥔 가해자와 오랫동안 손을 잡으면서 서로의 이익에 복무했으니 말이다. 그 과정이나 배경보다 중요한 건 권력자가 약자에게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성적인 폭력을 가했다는 명백한 사실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제 와인스틴의 권력 따위는 필요치 않을 정도로 컸다 이건가’라는 속내나 저의를 뒤지는 건 무가치한 잡담일 뿐이다. 스스로 권력자가 된 톱스타와 말 한마디로 모든 이력이 몰수될 수 있는 신인배우가 각기 다른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미투운동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어냈다. 임은정 검사와 서지현 검사는 물론 다른 사람이다.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조사의 책임을 맡은 조희진 검사장에 대한 입장도 달라 보인다. 그렇다고 두 여성 검사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렇지 않다. 같은 이야기에 대해 누구의 저의, 누구의 속내를 갈라내기 바쁘다면 결국 ‘미투’는 흐름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최후에 웃는 자는 ‘농담’으로 성희롱을 하고, ‘실수’로 허벅지를 주무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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