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디터 낡고 오래된 것을 나는 유난히 좋아한다. 철 지난 라면 봉지, 담배 가게 표지판, 산길을 가다 주워 온 흙투성이 기와 파편도 모은다. 타박이 쏟아진다. 집이 쓰레기장이냐는 것이다. 그래도 안온함을 안겨주는 낡은 것들을 쉽게 버릴 수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새 피 수혈’도 필요하지만 ‘올드보이’도 있어야 한다. 정치판만큼 사람이 쉬이 바뀌는 곳도 없다지만, 노정객도 필요하다. 이들의 쓰임새는 낡았지만 질리지 않도록,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고 정치적 타협점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낡은 것을 무척 좋아하는 듯하다. 그 덕에 ‘올드보이’가 광역단체장 후보로 대거 호출됐다. 김문수, 김태호, 이인제…. 올드보이면 뭐 어떤가. 문제는 올드한 생각이다. 홍 대표는 6·13 지방선거를 ‘좌파 심판장’으로 몰아간다.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좌파 사회주의 경제실험으로 거리에는 실업이 넘쳐나고 서민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는데 법원·검찰·경찰·국정원·정치·경제·사회·문화계 전부를 좌파 코드 인사로 채우고, 전교조와 강성노조는 자기 세상을 만난 양 그들만의 행복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며 “이를 막는 것은 국민의 심판밖에 없다”고 적었다. “선거 한번 해봅시다.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은지 한번 봅시다”라고 결과를 자신했다. 그에겐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낸 개헌안도 “사회주의 체제로 변경을 위한 개헌”이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남북 위장 평화쇼”이며, 개헌과 정상회담의 목적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한미군 철수하고 낮은 단계로의 연방제로 가기 위한 체제 변경”이라고 확신한다. 모두 자신의 경험을 신념으로 체화한 것일 테니 타박할 생각은 없다. 그저 세상의 변화를 보지 못하면 꼰대가 되고, 결국 퇴물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좌파 척결’은 해방 이후 보수·수구 정당이 지속적으로 우려먹던 선거 프레임이다. 때로는 재미를 봤지만,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과연 먹힐까. 지난해 5·9 대선에서 이미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좌파로 낙인찍었지만, 자유한국당은 패배했다. 문재인 정부가 좌파정부도 아니지만, ‘좌파’라 해도 국민이 선택했다. 더욱이 남북관계 진전에 다수 국민이 환호한다.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북한 핵·미사일에 전쟁 위기설로 치달았던 위험사회를 벗어난 것에 안도한다. 개헌안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이 좌파적이라는 지방분권, 토지공개념 강화 등에 대한 공감대가 높다. 시대정신을 읽고 비전을 제시하는 게 정치 지도자다. 홍 대표는 고장난 오디오처럼 낡은 이념선동을 반복한다. 홍 대표가 추대한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는 지난해 6월25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좌파정권의 폭주가 시작되는데 이 정권을 5년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냐”고 외쳤다. 그랬던 그도 “이번 6·13 선거는 진보와 보수 등 이념문제나 남북문제, 개헌 등은 표심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4월10일 충청권 국회 출입기자 간담회)이라고 진단했다. 홍 대표도 한때 정치적 이단아로, 보수정당에 빛과 소금 역할을 할 때가 있었다. 이제 철 지난 가죽점퍼를 입고, 좌파 심판을 외치는 그를 보는 당내 시선은 따갑다. 보수언론조차 그를 조롱한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야당 복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도 “홍준표가 고맙다”고 말한다. 민심과 따로 노는 홍 대표가 야당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힘을 빼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세상에 살다 보면, 뒤처지고 버림받기 마련이다. 잡음을 내는 빈티지 오디오도, 제대로 작동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웬만큼 흠집 난 엘피판도 그럭저럭 운치를 더한다. 하지만 흠이 지나쳐 고치는 비용이 더 들면 애물단지가 되고, 그땐 버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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