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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이런 희망이 뭇매 맞지 않기를 / 박주희

등록 2018-06-04 18:32수정 2018-06-04 19:15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지방선거 때마다 투표소에 들어서면 공부 안 한 수험생이 된 듯 막막했다. 투표용지는 받아들었으나, 찍을 데가 없으니 군데군데 비워둔 채 찜찜하게 투표장을 나왔다. 특정 정당 후보와 그 정당 공천에서 떨어져 무소속이 된 후보만 있으니, 온전한 선택권조차 없는 선거를 줄줄이 치렀다. 팽팽한 경쟁 속에 다양한 정당의 후보들을 놓고 공약과 인물을 견줘보는 재미는 딴 세상 일이었다. 운 좋게 가끔 다른 정당 후보가 있으면, 선택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그러다 보니, 대구는 지난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투표율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선거 결과도 뻔하니 내가 사는 곳보다 다른 지역에 관심을 두고 개표를 지켜보곤 했다. 특정 정당 일색인 결과에 대해 전국에서 빗발치는 비판은 유권자들의 몫이었다. 건강한 변화를 바라던 유권자들조차도 도맷금으로 비난받았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선거는 싱겁거나 찜찜하거나 때로 억울하게 끝났다.

이번 6·13 지방선거는 다르다. 대구의 후보등록 현황에서부터 변화가 읽힌다. 자유한국당 149명, 더불어민주당 89명, 바른미래당 48명, 정의당 11명, 민중당 8명, 대한애국당 16명, 노동당과 녹색당이 각 1명씩 등록했다. 무소속도 70명이다. 한국당 후보자 수는 지난 선거와 비슷하고 민주당은 역대 지방선거를 통틀어 가장 많은 후보를 냈다. 적어도 같은 정당 출신 후보들만 있는 선거구는 확실히 줄었다는 얘기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 변화는 더 뚜렷하다. ‘특정 정당 텃밭’이라는 콘크리트 믿음에 금이 가는 수치들이 눈에 띈다. 광역단체장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도 이전 선거와 달리 경쟁구도가 형성됐음을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두 당의 지지율이 대구·경북에서 오차범위 안 접전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상당수 지역 의회가 특정 정당 쏠림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진다. 시교육감 선거는 경력과 지향이 다른 세 후보가 맞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선거가 이렇게 전개되자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티케이가 디비진다(뒤집어진다)’며 희망 섞인 기대를 하는 쪽과 ‘이 지역 부동층은 어차피 노년층과 샤이 보수라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단언하는 쪽이다.

지역 정치권에서 진정한 변화를 준비하던 이들은 선거 시작 전 이미 한 차례 희망이 꺾였다. 4인 선거구제가 무산됐을 때다. 진보정당을 비롯한 다양한 정당들이 의회에 들어가 지방정부를 견제하기를 바랐지만, 거대 정당의 욕심에 간단히 무시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별한 희망을 품고 이번 선거를 맞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던 이들이 ‘이번에는 해볼 만하다’며 대거 나섰다. 일단 경쟁구도가 형성되자 선거다운 승부가 벌어진 곳이 확 늘었다. 덕분에 좀처럼 듣기 힘든 ‘박빙’이라는 말이 들린다. 처음에는 이 낯선 상황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선거가 무르익으면서 “난생처음 내가 지지하는 시장, 구청장을 보는 거냐”며 기대하는 이들이 생겼다. 물론 기대가 큰 만큼 결과에 대한 우려도 크다. 선거 당일 개표방송 시작과 함께 대구·경북만 색이 다른 섬이 되는 지도를 마주하게 될 각오도 하고 있다.

그래도 이번만은 유권자로 대접받고 있어 억울하지 않다. 종일 왕왕 울려대는 유세 소음이나 로고송이 거슬리지 않는다. 서울 정치권이나 언론이 ‘바뀔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것도 싫지 않다. 전국 모든 유권자가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듯 쏟아내는 시시콜콜한 서울과 수도권의 선거 기사도 봐줄 만하다. ‘티케이는 안 된다’고 야유하는 험한 댓글도 너그럽게 넘긴다. 초접전 지역 소식을 들어도 크게 부럽지 않다. 투표용지 칸칸마다 희망을 꾹꾹 눌러 찍고, 투표함에 넣는 상상만으로도 뿌듯하기 때문이다.

6·13, 대구·경북이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지역으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딛는 날이 되리라 기대한다. 이런 희망이 뭇매 맞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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