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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저녁에 엄마아빠가 있는 삶 / 최혜정

등록 2018-07-04 18:34수정 2018-07-05 19:44

최혜정
정치에디터

<한겨레> 정치부에는 13명의 기자가 소속되어 있다. 30~40대가 주력이다 보니, 어린 자녀를 둔 기자들이 여럿이다. 이 가운데 만 5살 이하의 영·유아 자녀를 둔 기자는 4명이다.

일단 나는 만 5살 딸아이를 둔 이른바 ‘워킹맘’이다. 출근 시간쯤에 일어나는 아이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엄마, 오늘은 아침 일찍 오세요”라며 배꼽인사를 한다. ‘아침’은 ‘최대한 이른 시간’의 의미다. 집에 빨리 오라는 얘기다. 하지만 안 자고 버텨봐도, 엄마는 결국 자신이 잠이 들고 나서도 한참 뒤에나 온다는 걸 아이도 이미 안다.

그동안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 <우리 엄마는 언제나 바쁘대요> 따위의 동화책을 엄선해 의식화 교육을 시켰다. 빨간 날에 출근할 때는 칭얼대는 아이에게 “회사 아저씨가 엄마 안 오면 혼낸다고 했어”라며 공포감과 동정심을 자극했다. 지금도 아이는 누군지도 모를 ‘회사 아저씨’를 미워한다.

다크서클과 터진 입술이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ㄱ기자는 만 5살, 3살 아이의 아빠다. 지난해 여름,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 14시간의 ‘근무 지옥’에 내동댕이쳐졌다. 큰아이는 아빠가 유치원 등·하원을 시켜주던 연수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가 좋았다”고 한단다.

두 아이의 엄마인 ㄴ기자는 말이 늦게 트인 아이 때문에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ㄴ기자는 “엄마가 집에 늦게 오는 바람에, 애가 엄마한테 말을 못 배웠다”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전해듣고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2년 가까이를 주 6일, 70여시간 일하다 건강과 가정이 모두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는 타사 동료 기자의 푸념을 들은 적도 있다. 장시간 노동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무제 본격 시행을 앞두고 온갖 걱정이 쏟아져나왔지만, 우리는 내심 한마음으로 7월1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늦은 퇴근 뒤 맥주를 들이켜고 잠을 청하는 날 대신, 가족들과 저녁 먹고 산책하는 날이 ‘현실화’되길 꿈꿨다.

52시간제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올 2월에 통과됐지만, 근무시간 단축은 오랜 논의의 결과물이다. 2010년 6월 노사정은 2020년 전까지 연평균 노동시간을 1800시간대로 단축하기로 합의했다. 19대 국회에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주 52시간제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대선의 주된 화두 역시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2012년 손학규 당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까지 되짚지 않더라도, 지난해 각 대선 후보들은 노동시간 연 1800시간으로 단축, 칼퇴근법 도입 등을 내세웠다. 10년을 일하면 1년을 쉬도록 한다는 ‘전국민 안식제’라는 아이디어까지 등장했다.

그러니 이제서야 “준비가 안 됐다”는 일부 경영계의 아우성을 받아주기에 앞서, “그럼 그동안 뭘 했나”라고 되물어야 한다. 여당 원내대표가 노동시간 단축을 형해화시킬 수 있는 ‘탄력근무제 단위 연장’을 쉽게 언급하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당장 노동자의 소득 감소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생산성을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등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다만 대전제는 ‘뒤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우리 가족 중 가장 기뻐하는 이는, 주말에 출근하는 나와 남편 대신 독박육아를 해온 친정엄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나비효과’가 되어 한국 사회를 뒤바꿀 거라고 믿는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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