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디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은 거짓, 과장, 감정 과잉투성이다. 발언 하나하나에 무게를 둘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최강국 지도자의 메시지가 마냥 허투는 아니다. 장황한 말들 속에 진실을 감별할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한 패턴이 있다. 악담과 위협이 반복될수록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허세와 엄포를 즐기지만 그게 통하지 않으면 약이 오른다. 처음부터 반드시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엎질러진 물이 된다. 거듭 던져놓은 말의 무게까지 더해져 스스로한테 행동을 강제당한다. 엄포를 크게 쳐놨으니 주변에서 타협책을 내밀어 가라앉히기도 쉽지 않다. 트럼프의 핵심 표적은 지금 중국으로 이동했다. 위협의 공식에 따라 중국에 500억달러어치, 2000억달러어치 식으로 관세 폭탄을 판돈 올리듯 경고하더니 실행에 옮긴다. 그는 북한과 한창 대결할 때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지렛대로 삼겠다고 했다. 엄청난 대중국 무역적자 문제는 일단 접어두겠다고 했다. 지금은 반대로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 해결돼야 북한과의 협상도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북핵 협상이 더딘 것은 중국의 방해 때문이니 중국은 그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양보하라는 논리다. 북핵 ‘해결’은 ‘ㅎ’자나 이뤘을까 말까인데 선후와 주종이 바뀌었다. 북핵이 중국의 무릎을 꿇리기 위한 지렛대로 뒤바뀐 모양새다. 애초 트럼프 집권 초기에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니까 큰일 났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자 ‘트럼프니까 해냈다’로 일변했다. 북핵과 중국을 엮어 이상한 방정식을 들이민 지금은 ‘트럼프는 결국 그래’로 되돌아가고 있다. 한국에는 이중의 위기다. 미-중 대결은 세계 질서의 주도자 지위를 놓고 벌이는 패권 다툼 차원이다. 북-미 대결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나 쟁점은 핵무기 비확산 하나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에 단 1달러도 상품수지 흑자를 보지 않는다. 중국은 천문학적인 대미 무역 흑자국이다. 돈이 유일무이한 가치 척도인 사람에게 어느 나라가 더 미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중국을 초장에 제압하려는 미국 엘리트들의 전략적 구상에 트럼프의 단순한 계산이 맞물리고 있다.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의 물결에 1930년대의 대파국을 경고하는 사람이 많다. 영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 역조 해결 과정에서 발생한 아편전쟁의 기억도 떠오른다. 그때의 영국이나 지금의 미국이나 중상주의가 행동 배경이다. 국가들 간의 극단적 실력 행사 형태는 전쟁 또는 경제 봉쇄다. 관세 폭탄은 경제 봉쇄의 약한 버전이다. 미-중의 이번 대립이 일회성 발작으로 끝나기를 기대해야겠지만 심각하고 연속적인 대결의 서막일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미국 패권의 탄생·성장·승리·과시 등 국면마다 큰 파동을 겪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는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서 미국 대통령을 심하게 깎아내렸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트럼프의 지력을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런 수준도 장점은 있다. 초등학생이 어른에 견줘 원하는 것을 받아낼 확률이 높다. 떼만 쓰면 되니까. 문제는 초등학생들은 공공성과 책임이라는 개념이 약하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수준이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라면 임기 마지막 해에는 그 무섭다는 중2가 된다.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두번째 임기 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 백악관 관리들은 그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간다니 배울 점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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