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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공공건물 옥상에 왜 청년임대주택을 못 짓나 / 이재명

등록 2018-09-09 18:51수정 2018-09-10 15:02

이재명
디지털부문장 겸 에디터

어디를 가도 집값 얘기가 빠지질 않는다. 애당초 집을 사겠단 엄두조차 내보지 못한 나는 미친 집값에 절망하는 쪽이나 웃음 짓는 쪽 어디에도 끼지 못한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 여기는 나도 집값의 80%까지 치솟는 전셋값에 집을 사는 게 더 합리적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빽빽한 고층 아파트는 숨이 막히는데다 평생 내 힘으로 갚을 수 없는 빚을 떠안는 게 끔찍해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지금껏 전세살이로 버틸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감사함은 눈을 청년에게 돌리면 미안함으로 바뀐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비록 고도성장의 끝물이었지만 안정적인 직장 덕에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할 기회는 얻을 수 있었다. 그 뒤 집 한 채를 빼곤 특별한 자산도, 마땅한 노후대책도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 놀이터와 자연녹지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쇼핑몰과 지하철역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벌인 욕망의 치킨게임 결과가 미친 집값이다. 그 거품이 터지든 대물림되든 피해는 다음 세대로 전가된다. 이미 청년들에겐 월세로 시작해 전세를 거쳐 집을 사는 주거 사다리가 사라졌다. 안식처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결혼을 늦추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성장의 과실은 어른세대가 누리고 그 폐해는 청년세대가 떠안는 사회에서 ‘세대 간 연대’는 공허한 구호다. 우리는 이를 국민연금 갈등에서 목도하고 있다.

집값을 잡을 수 있는 식견 같은 건 내게 없다. 인간의 욕망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청년들이 집을 사지 않고도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을 벗어나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건 어른세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대안이나 해법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청년들이 적정한 임대료에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지금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행복주택, 매입 임대주택 사업 등이다. 젊은층일수록 대중교통이나 편의·문화시설 접근성이 좋은 곳을 선호하는데, 이런 곳에 임대주택을 지어 청년들이 도심에서 밀려 나가는 걸 막자는 취지다.

문제는 정책이나 설계도가 없는 게 아니라 실행 의지와 추진력의 부재다. 임대주택 사업의 초라한 성적표를 지적할 때마다 정부는 사업비 마련이 어렵다거나 적절한 터가 없다는 핑계를 댄다. 그러나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가 전한 얘기다. 서울 도심에 청년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땅이 부족하다고 해 일부에서 구청·경찰서·주민센터 등 공공건물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예컨대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남대문경찰서 옥상에 임대주택을 올리자는 것이다. 실제 대부분 공공건물은 교통 요충지에 자리해 접근성이 뛰어나고 땅이나 건물도 지방자치단체나 국가 소유라 임대료를 낮출 여력도 충분하다. 이 아이디어는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특정 구청 건물을 활용하려면 공사를 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임시장소로 사무실을 옮겨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불편을 감내하기 싫어한다. 심지어 정부가 공사 기간 중 이전 비용과 임대료를 제공하고, 건물을 올리면 일정 공간을 무상으로 준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또 지금 단체장들도 이런 사업이나 공사가 임기 뒤에나 끝나게 되니까 소극적이다.”

청년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유예된 결정적 원인이 공무원의 안일함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좌절을 넘어 분노할 일이다. 지자체를 설득하고 협조를 구할 책임도 정부에 있다. 집값 불안을 투기세력 탓으로 돌릴 순 있으나 정책 부진의 이유를 지자체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투기와의 전쟁도 필요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서둘렀으면 한다.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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