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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B급 며느리’와 ‘며느라기’의 이번 추석은? / 김은형

등록 2018-09-19 18:22수정 2018-09-20 09:20

김은형
문화스포츠 에디터

부동산값이 어떻게 될까,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선언이 나올까, 뉴스에 귀 기울이게 되는 요즘이지만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지난 설 연휴, 수북이 쌓인 전 소쿠리를 패대기치고 싶은 마음에 불을 댕겼던 <B급 며느리>는 이번 추석을 어떻게 날까. 지난 설 때 아내 민사린에게 다음 명절부터 친정(처가)과 시집(본가)을 번갈아 먼저 가기로 약속했던 <며느라기>의 무구영은 이번 추석에 과연 그 약속을 지킬까.

반갑게도 지난주 <며느라기> 추석맞이 특별 만화가 올라왔다. 슬프게도 대한민국 평균 남편 무구영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친정 먼저 간다는 이야기를 시부모에게 했냐는 아내의 질문에 “이제 말씀드려야지”라고 뭉개더니 은근슬쩍 자기가 일을 많이 할 테니 여동생이 본가에 오기 전에 친정으로 출발하면 안 되겠냐고 말을 바꾼다. 마누라 시집살이 안 시키는 신세대 남편이라고 자부하는 동시에 부모님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은 착한 아들로 남고 싶은 대한민국 평균 남성의 선택이다. 놀랍지는 않지만 해묵은 명절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도 이해 못 하는 그 둔감함에 고구마 100개의 여운이 남는다.

고부간 긴장관계의 살벌함으로 따지면 <며느라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정적(?)이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의 이번 추석은 어떨까? 선호빈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다. 의외로 싱거운 답변이다. “이번 연휴 때 두 분이 부부여행 떠나셔서 집에 안 가도 됩니다. 자식들 배려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하하하.”

올 초 개봉해 화제를 낳았던 <B급 며느리>는 선 감독이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에 카메라를 들이댄 사적 다큐다. 시어머니나 며느리나 다소 센 캐릭터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평균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두 사람 간의 긴장과 폭발, 그리고 다만 회피하고 싶은 대한민국 평균 남편 선 감독의 이야기가 웃기면서 서글프다. 시부모, 시동생 생일, 시할아버지 제사 등등을 챙기는 게 며느리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손주는 언제라도 만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시어머니를 아내 ‘82년생 김진영’씨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몇차례 갈등 끝에 ‘B급 며느리’는 시가에 내려가기를 거부하고 카메라는 두 여성과 한 남성(선 감독)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영화는 몇 계절이 지난 뒤 갑자기 아내 진영씨의 제안으로 본가에 가서 현관문을 닫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 문 안에서 극적인 화해가 벌어졌는지, 살얼음판이 펼쳐졌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 이후 다시 왕래를 해요. 명절도 잘 챙기고 남들 보기 멀쩡한 가족 같죠. 어머니가 ‘진영이 왜 갑자기 착해졌냐, 영화 찍으려고 일부러 그런 거냐’ 말씀하신 적도 있다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로를 이해한 건 전혀 아닌 것 같고요(웃음), 다만 불가능한 것을 깨달은 거죠. 아내는 논리적으로 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다는 기대를 포기하고, 특히 어머니가 며느리를 이길 수 있다는 고집을 꺾으시면서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선 감독의 말에는 가족관계의 진실 한 갈피가 담겨 있다. 이해 불가능. 이해하려는 순간, 왜 이러지? 왜 저러지? 물음표만 머리 위로 뭉게뭉게 피어나고 진정한 이해는 불가능해지는 관계 말이다. 무구영이 처갓집 먼저 가야 하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평생을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서 산 어머니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파국을 마다 않는 설득이 아니라 선 긋기가 아닐까. 화해 불가능해 보였던 ‘B급 며느리’ 가족의 공존이 선 긋기를 통해 가능해진 것처럼 말이다. 대한민국 평균 남편 무구영의 건투를 빈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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