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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화·들·짝] 개혁의 시대, 프랑스와 멕시코의 경우

등록 2018-12-18 17:43수정 2018-12-18 19:31

노란 조끼 시위는 격렬한 양상과 지속성, 폭넓은 참여 등에서 1968년 5월 일어난 68혁명과 비교된다. 시위대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다양한 조처를 요구하고 있으나, 계급투쟁보다 불만스러운 현실에 대한 서민과 중간층의 저항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와 멕시코의 경우,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현안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 가장 큰 자산은 정의에 목마른 국민의 의지다. 우리나라 역시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들 나라에 중요한 것은 일관된 개혁과 국민 통합이다.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해 5주째 이어진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가 정부 정책 조정은 물론이고 정치 구조까지 바꿀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지난해 5월 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해 60%를 넘었던 에마뉘엘 마크롱의 지지율은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그의 위기는 얼마 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독일의 지도력 불안과 맞물려 유럽연합(EU)의 진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금 프랑스 못잖게 관심을 끄는 나라는 멕시코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달 초 취임사에서 “수십년간 신자유주의 정부가 남긴 부패·타락 등 재앙에 가까운 유산을 뒤집을 것”이라고 했다. 중도좌파 성향의 그는 2000년부터 5년 동안 수도 멕시코의 시장을 지내고 대선에도 두차례 출마했으나 기성 정치권과는 거리를 유지해왔다. 그는 신생정당인 국가재건운동의 후보로 나와 지난 7월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는 등 새 시대, 새 정치를 상징한다.

■ 두 나라 정치 상황의 공통점은 불의와 불평등에 분노하고 맞서려는 국민 의지가 높다는 점이다.

노란 조끼 시위는 격렬한 양상과 지속성, 폭넓은 참여 등에서 1968년 5월 일어난 68혁명과 비교된다. 68혁명은 학생과 노동자를 축으로 문화투쟁과 계급투쟁이 결합한 데 비해 이번 시위는 주도세력이 뚜렷하지 않다. 시위대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다양한 조처를 요구하고 있으나, 계급투쟁보다 불만스러운 현실에 대한 서민과 중간층의 저항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2005년 소요 사태의 확대판에 가깝다. 당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교외 지대에서 경찰 폭력이 방아쇠가 돼 수십일 동안 과격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계속된 바 있다. 국제적으로는 2011~2012년 북미와 유럽 주요 도시에서 일어났던 ‘점령하라’(오큐파이) 운동과 비슷하다. 마크롱은 취임 이후 친자본적인 노동·조세 정책을 펴 ‘중간층을 쥐어짜는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피부로 느끼는 양극화가 예전보다 더 심해지면서 부당하다고 여기는 국민이 많아진 것은 당연하다.

멕시코 국민의 사정은 더 어렵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발효 이후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어 전체 경제 규모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세계 10~15위권으로 커졌다. 브라질과 더불어 남미 전체 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정치 민주화도 진전돼 71년에 걸친 제도혁명당의 장기 지배가 끝나고 2000년 첫 정권교체를 이뤘다. 그러나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상위 10%가 국부의 3분의 2 가까이를 차지하고, 인구의 5분의 1이 빈곤선 아래 있다. 국민행동당의 12년 집권 이후 2012년 다시 제도혁명당 정권이 들어서는 등 장로정치·독점자본·언론을 축으로 한 기득권 구조는 여전하다. 범죄와 부패는 세계 정상급이다. 지난 10년 동안 25만명이 범죄로 숨지고 3만4천명이 실종했다. 여기에다 성장률마저 1%대로 떨어져 국민이 체감하는 불의의 정도는 더 커졌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이런 국민 정서에 실용적으로 접근해 집권에 성공했다.

■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지구촌 민중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강도가 크게 높아졌다. 그것이 어떻게 표출되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선 모순을 일시 봉합한 가운데 갈등이 지속되는 경우다. 2011~2012년 ‘아랍의 봄’ 동안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불타올랐던 중동·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옛소련 지역의 몰도바·아르메니아, 중화권의 홍콩·대만, 동남아의 타이·미얀마, 아르헨티나·온두라스·코스타리카·니카라과 등 중남미 나라, 나이지리아·에리트레아·수단·앙골라 등 아프리카 나라가 이에 속한다. 장기 내전의 늪에 빠진 중동의 시리아와 예멘, 국가 파산 직전까지 간 남미의 베네수엘라는 최악의 사례다. 이들 가운데 여럿은 난민 대량 배출국이며, 국제 난민 문제는 지금 지구촌 정치의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가 됐다.

다음은 권위주의적 포퓰리즘(대중주의, 대중영합주의, 선동정치)의 득세다. 미국과 동유럽에서 이 현상이 뚜렷하다. 이 유형은 이민자·난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주류 인구집단의 결속을 꾀하는 정체성 정치를 펼치는 공통점을 갖는다. 러시아·브라질·터키·인도 등 각 지역에서 강국으로 불리는 나라들도 이 흐름 안에 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좌우 포퓰리즘 정당의 연정이 들어선 것은 이 흐름이 이념에 기반을 둔 기존 정치 틀을 뛰어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또한 포퓰리즘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권위주의가 강해지고 있다.

프랑스와 멕시코의 경우,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현안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 가장 큰 자산은 정의에 목마른 국민의 의지다. 우리나라 역시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들 나라에 중요한 것은 일관된 개혁과 국민 통합이다.

■ 개혁이 요구되는 나라의 가장 큰 위험은 포퓰리즘에 쉽게 기대는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포퓰리즘에는 몇가지 유형이 있다. 우선 이념 정치의 연장선에 있는 계급적 포퓰리즘이다. 베네수엘라가 대표 사례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10여년간 밀어붙이고 2013년 그가 숨지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어받은 이 포퓰리즘은 철저한 실패로 나타나고 있다. 다수 국민이 인도적 위기를 겪는 가운데 인구의 10%가 해외로 탈출한 상태다. 포퓰리즘의 물질적 기반이었던 유가의 하락이 결정적인 계기이지만, 석유경제를 보완할 경제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서 정책 파산은 예고된 것이었다.

다른 유형은 지금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여러 나라가 가고 있는 정체성 포퓰리즘이다. 정체성의 핵심은 최대 민족·인종·종교 집단의 정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백인·기독교도,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 신자, 인도에서는 힌두교도, 미얀마에서는 버마인, 영국에서는 잉글랜드인이 이에 해당한다. 어떤 집단의 동일성을 강조해 동력을 증폭하는 것이 정체성 포퓰리즘이므로, 그에 포함되지 않는 집단에 대해서는 제한·배제·분리·거부가 행해진다. 이주민(이민자와 난민)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손쉽게 그 대상이 된다. 힘이 있는 나라는 흔히 다른 나라를 정체성 정치의 제물로 삼으려는 유혹에 빠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력한 정치적 자산이 있는 나라일수록 포퓰리즘이 빠르게 자리를 잡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가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패권국이라는 지위가 있다. 2차대전 이전 아돌프 히틀러에게는 강력한 게르만 민족주의와 약한 이웃이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프랑스와 멕시코에는 이런 자산이 잘 보이지 않는다.

■ 나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political establishment)의 한계는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서구 선진국은 오랜 기간 중도 정치세력의 안정적인 집권을 통해 번영해왔다. 기성 정치 전체가 불신 대상이 된 지금은 이 공식이 통하기 어렵다.

해법의 방향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충분한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역사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세력이 일정 기간 정치를 끌고 가는 것이다. 포퓰리즘 세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포퓰리즘 정권은 일시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밑천을 드러내고 모순을 더 심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멕시코는 이 길로 갈지, 아니면 포퓰리즘 쪽으로 기울지 분기점에 서 있다.

다른 하나는 중도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틀을 유지하되 민주주의를 더 강화하면서 지속적인 개혁을 이뤄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최선의 길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와 경험의 축적을 전제로 하는 점에서 쉽지 않다. 지금 지구촌에서는 독일과 북유럽 나라들이 이에 가깝다. 프랑스도 여기에 합류할 수 있다. 유럽 남쪽의 이탈리아와 스페인·그리스는 성공하지 못한 채 정치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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