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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화.들.짝] 걷는 생활의 뒷면

등록 2019-09-03 17:49수정 2019-09-03 19:57

필자는 장애인이다.

오른쪽 다리가 거의 없어, 양쪽에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의족은 오히려 몸에 부담돼, 오랜 우여곡절 끝에 포기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도 했으나, 10여년 전 마음먹고 걷기를 시도한 뒤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몇해 전부터는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집에서 역까지, 역에서 회사까지 각각 10~15분씩 걸린다. 만만찮은 거리다. 점심시간의 산보까지 합쳐 하루 1만걸음은 걷는다. 이제 팔다리 힘이 부족하거나 체력이 달려 걷지 못하는 일은 없다.

지하철에서 나와 같은 장애인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정해진 시각에 출퇴근하는 장애인이 많지 않은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지하철 출퇴근을 하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렸다. 실제 해보니 상당한 적응 과정이 필요했다. 곤란한 경우도 계속 생겼다. 이런 경험을 얘기하는 것은 일상의 작은 부분들이 모여 함께 사는 삶이 이뤄진다는 생각에서다.

■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조심해야 할 게 많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력도 떨어진다.

계단을 내려갈 때 벽 쪽에 붙는 것은 기본이다. 사람을 피하고, 넘어지더라도 덜 다치기 위해서다. 에스컬레이터를 안정감 있게 타게 될 때까지 적잖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움직이는 계단 바로 앞에 서서 오른손으로 난간을 잡고 왼발을 정확하게 디뎌야 한다. 오른쪽 지팡이가 바닥이나 벽에 걸리면 안 되므로 동시에 살짝 안쪽으로 튕긴다. 그리고 바로 왼쪽 지팡이를 왼발 옆에 위치시켜 균형을 잡는다. 쉬운 듯하지만, 지금도 첫발을 디딜 때 약간 긴장한다. 한번은 넘어지기도 했다. 내릴 때는 계단을 몇개 남겨두고 양쪽 지팡이를 똑바로 세워 준비해야 한다. 앞사람과 붙어 있으면 부닥칠 수 있으므로 적어도 두 계단 정도는 간격을 둬야 한다. 한번은 여행 가방을 끌고 가던 앞사람이 늦게 내려 가방 위에 쓰러진 적이 있다.

전동차 안에서는 반드시 출입문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사람에 막혀 내릴 수 없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혼잡한 전동차의 반대쪽 문으로는 내리기가 어려우므로 다음 차를 기다려 탄다. 다행스럽게도 출근 시간에는 시내에서 바깥쪽으로 가는 방향이어서 대개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양쪽 끝 노약자석은 대개 한둘 정도 빈자리가 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으므로 승강장에서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빈 좌석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탄다. 내릴 때는 전동차가 역에 진입할 때쯤 일어나 어딘가에 기대 서 있는 게 좋다. 차가 완전히 정지하면 두세걸음 이동해서 내린다.

내린 뒤 계단 쪽 모서리를 돌 때가 가장 위험하다. 전동차에 타려고 뛰는 사람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있다. 그래서 애초부터 내리는 역의 계단 전체가 보이는 칸에 탄다. 계단을 오를 때도 역시 오른쪽 난간이나 벽 쪽에 붙는다.

이 모든 걸 실수 없이 해야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돌발 상황이 벌어진다. 며칠에 한번은 위험한 일을 겪는다. 거의 사람이 원인이다.

무엇보다 앞을 보지 않고 걷는 사람이 너무 많다. 원래 산만한 이도 있지만 요즘은 대부분 휴대전화 탓이다. 지팡이를 짚고 가면 바닥을 보고 걸을 수밖에 없다. 작은 굴곡이나 물기, 쓰레기 등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야는 발아래 1~2m 정도로 제한된다. 그런데 앞쪽에서 그 범위 안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한번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마다 적어도 10여차례는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나이 든 이도 적잖다. 나이가 많을수록 동작이 둔해 부닥치기 직전에야 멈추게 된다.

바로 앞에서 휴대전화를 보며 가다가 갑자기 서버리는 경우도 하루 여러차례 경험한다. 옆으로 피할 수가 없어, 재빨리 서지 않으면 충돌한다. 계단을 오를 때는 더 위험하다. 약간의 반동을 주고 한번에 두세 계단씩 오르는 게 보통인데, 앞에서 멈추면 부닥칠 확률이 아주 높다. 이런 사람은 대개 걸어가는 속도도 느리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서 올라가며 가방이나 몸이 내 지팡이에 부닥치기도 한다. 학생이나 젊은 여성이 여러개의 가방을 들고 가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는 것을 보면, 자신의 행동이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전동차에 빨리 타려 하거나 한가운데 서서 내리는 길을 막는 사람도 가끔 있다. 자칫 지팡이와 부딪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가슴이 철렁한다. 전동차 문이 열릴 때까지 문 안쪽에 붙어 서서 길을 막는 사람도 있다. 대개 휴대전화를 보거나 졸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사람들의 동선을 살펴 그 흐름을 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그런데 흐름을 흩트리거나 무심하게 다니는 사람이 상당히 있다. 모두 움직이는 폭탄과 같다. 뛰어다니는 사람은 더 위험하다. 그래 봐야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은 1분이 안 된다.

■ 우리나라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쾌적하고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에게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역 바닥 전체가 너무 미끄럽다. 지팡이 아래쪽 고무의 지름은 4.5㎝ 정도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돈을 많이 들인 곳일수록 더 미끄럽다. 아스팔트나 거친 시멘트 길이 가장 마찰력이 강해 안전한 편이고, 반질반질한 지하철 바닥은 주차장과 더불어 최악이다. 걸음마다 지뢰밭을 통과하듯이 조심해야 한다. 몇차례 넘어지기도 했다. 처음 공사할 때 신경 쓰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바닥 일부분을 덜 미끄럽게 바꿀 수는 없을까.

엘리베이터가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가는 방향과 다르면 이용하기 어렵다.

출퇴근 시간의 혼잡은 피할 수 없겠지만, 흐름을 더 원활하게 하는 방법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오가는 사람이 마주치는 곳에는 대개 봉과 줄 등의 차단 시설이 돼 있다. 하지만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적잖다. 좁은 공간에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려오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구역에는 좀 더 확실하게 흐름을 통제할 수 있도록 시설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 나의 걷는 생활에서, 지하철의 난이도는 중간 정도다. 시내버스는 그 위쪽에 있다. 혼잡한 차 안에서 자리 잡기와 승하차가 모두 어렵다. 그래서 아직도 혼자서는 버스를 타지 않는다. 길을 걸을 때도 지하철만큼은 아니지만 조심해야 한다. 각종 요철과 장애물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사람이다. 좁은 인도에선 사람끼리 부닥치고, 좀 넓은 인도에는 자전거와 킥보드는 물론이고 오토바이까지 다닌다. 등산은 스스로 선택한 고생길이므로 논외로 한다.

애초부터 시설이 미비하면 이후에 고치기는 몹시 어렵다. 사람의 행위는 조금만 신경 쓰면 바꿀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수록 함께 사는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고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매일 걸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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