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영상부문장 얼마 전 막을 내린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 속 한서진(염정아)의 말처럼 지금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시대다. 학부모·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서울 중·상위권 대학의 수시모집 학종 비율은 평균 60%가 넘는다. 학종의 경쟁률이 보통 수십 대 일에 이르므로 대부분의 학생·학부모들이 학종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학종이 대세이기 때문일까?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학종이 ‘글로벌 스탠더드’ 아니냐고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선진국은 다들 학종과 같은 정성평가 방식으로 뽑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학종의 원형은 입학사정관제라 할 수 있는데, 선진국 가운데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동기도 그리 순수하지 않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미국 명문대들의 전통적인 선발 기준은 원래 학업 성적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 들어 유대계 신입생 비율이 급증하자 이들을 ‘걸러내기 위해’ 고안해낸 장치가 입학사정관제다. 성적으로는 유대계 학생에게 밀리는 미국 주류 계층(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 자녀를 ‘재량껏’ 뽑기 위해 입학정책을 바꾼 것이다. 이 새 입학정책이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은 “입학 지원자의 품격(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부족하지만 상류층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는 풍부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질)이다.”(제롬 카라벨, <누가 선발되는가>) 기부 입학·동문 자녀 특혜 등 입학사정관제의 추악한 실태를 폭로해 퓰리처상을 받은 대니얼 골든은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에서 “입학사정관제는 연줄이 확실한 상류층 자녀를 위한 브이아이피(VIP) 초대장과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입학사정관제가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정부도 매우 신중한 태도였다. ‘불투명성’ 탓에 고교등급제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상위권 대학들은 고교 간 학력 차이를 입시에 반영하게 해달라고 줄기치게 요구했고, 2004년에는 고려대 등 일부 사립대들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시범 도입될 때는 10개 대학에서 농어촌 특별전형 등 소외계층을 위한 ‘정원 외 전형’ 위주로 실시되는 데 그쳤다. 그러나 2008년 ‘대입 자율화’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3년 새 입학사정관제 모집인원이 10배 가까이 느는 등 급물살을 탔다. 교육운동 진영에서는 ‘3불’(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본고사 금지)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대학들한테 고교등급제의 우회 통로를 터주려는 속셈이라고 의심했다. 입학사정관전형은 선발 기준이 주관적이라서 특목고 등 명문고 학생에게 후한 점수를 주거나, 반대로 일반고 학생에게 불이익을 줘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학종’으로 이름만 바뀐 채 계속 확대됐다. 문제는 대학들이 학종을 통해 특목고 등 명문고를 우대한다는 의구심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실제 ‘100% 학종’인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의 경우, 2019학년도 합격자의 54%가 특목고·자사고 출신이다. 전체 고3 학생 가운데 특목고·자사고 학생이 5%가 채 안 된다는 점에 비춰보면 합격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그나마 학종 합격자의 출신 고교 유형을 공개하는 대학은 서울대가 유일하다. 나머지 대학은 그야말로 깜깜이다. 사정이 이러니, 학원가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특목고 우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마저 읽힌다. “만약 고교등급제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 학종 입시지도를 하는 교사나 입시전문가가 있다면 그는 철저히 무능한 자다”(이기정 교사, <경향신문> 칼럼)라는 현직 고교 교사의 고백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처럼 입시 당사자들이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한, 결과에 승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학종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 때다. 응급처방으로 우선 두 가지가 떠오른다. 국민들이 특목고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의심하는 비교과 영역 반영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학종을 교실 수업 활동과 평가 등 교과 중심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학종을 통해 어떤 학생(출신 고교 유형, 소득 분포 등)을 뽑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이뤄져도 ‘금수저 전형’이라는 의구심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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