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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화들짝] 시대의 담론⑦ 민주화 이후 대전환과 복지국가

등록 2019-04-30 16:03수정 2019-05-01 13:41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다. 민주화 이후 첫 단독 민주정부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져 김대중 정부가 탄생한 바 있지만, 군사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종필과의 디제이피(DJP) 연합에 기댄 것이어서 순수한 민주정부라고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첫 전후세대인데다, 정당 안 기득권 세력과의 제휴 없이 ‘월드컵세대’의 다수를 비롯해 국민의 지지만으로 당선된다. 시기적으로도 1997년 외환위기는 극복했으나 그 수단으로 마구 받아들인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구체화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 전쟁이 국제 정세를 규정하던 때다. 이런 배경에서 노무현 집권기인 2003~2007년이 새로운 ‘시대의 담론기’가 된다.

■ 국민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해 높은 기대를 나타낸다. 정부도 이에 화답한다. 이름을 참여정부로 짓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실현’을 3대 국정 목표의 하나로 설정한다.

국가정보원·검찰·경찰·국세청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제왕적 대통령 문화와 관행을 청산한 것은 큰 성과다. 권위주의 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던 3김 정치 또한 이 시기에 비로소 끝난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행정수도 건설과 공기업 이전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강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과거사진상규명법 제정 등을 통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과거사 청산 역시 민주화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발전의 주요한 물질적 기반인 복지제도 확충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 산업화와 민주화를 잇는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복지국가 관련 담론이 적극적으로 제기된다. 미비한 복지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에 더해, 외환위기 이후 심해진 경제·사회의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참여정부가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과제에서 큰 진전을 봤다면 이후 우리 민주주의 모습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 경제와 관련해 담론의 중심이 된 의제는 부동산 대책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다.

2016년 촛불혁명의 의미 가운데 하나로 ‘박정희 모델의 종식’이 꼽히지만, 새로운 경제성장 모델의 구축은 이미 당시에 중요한 과제였다. 박정희 모델이 낳은 각종 폐해는 두고라도, 이 모델의 전제인 정부-기업-금융의 삼각동맹이 외환위기 이후 해체되고 ‘수출 확대→투자·고용 증대→소비 증가’라는 선순환 구조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재벌과 외국 자본의 힘이 비대해졌으나 투자는 기피해 민생경제와의 괴리가 커진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현상이 산업화 이후 처음 나타난다.

정부는 동반성장(양극화 해소)과 세계화(개방)라는 해법을 내놓는다. 하지만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자금 조달(조세 강화)에 힘이 실리지 않으면서 개방에 방점이 찍힌다. 이를 상징하는 정책이 국민의 심한 반대를 뚫고 밀어붙인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양도소득세 강화,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대출 규제 등을 망라하는 부동산 대책은 기득권 세력의 반대가 컸으나 상당한 성과를 낸다. 가격을 안정시켜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악영향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실소유자 중심의 주택정책을 강화하는 정책 기조를 정착시킨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는 연평균 4.48%씩 성장한다. 뒤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하지만 그때부터 보수세력은 ‘잃어버린 5년’이라고 공격한다. 정치적 의도가 강하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가장 치열한 경제 분야 담론으로 부각된다.

■ 2000년대 초반은 9·11 동시 테러(2001년)를 당한 유일 패권국 미국이 일방적으로 국제 정세 재편을 추구하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2001년) 이후 고도성장의 절정을 구가하던 시기다. 또한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과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확대·발전이 당면 과제로 부각돼, 외교·안보 현안을 둘러싼 각종 담론이 이어진다. 정부가 균형외교와 대북 포용정책, 한-미 동맹의 합리적 재편을 추구한 것은 적절했으나 충분한 국민적 지지를 얻지는 못한다.

가장 논란이 된 사안은 각각 진보·보수 세력의 거센 저항을 받은 이라크 파병 결정과 전시작전권 환수 추진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침공을 뒷받침하는 한국군 파병은 분명 정의롭지 못하지만, 노 대통령의 말대로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 고육지책으로 전투병력이 아니라 평화·재건 목적의 병력을 보냈으나, 결국 김선일씨 피살 사건(2004년)과 기독교인 23명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2007년)의 간접적 원인이 된다. 단계적인 전시작전권 환수는 국력 확대와 정세 변화에 맞춰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는 당연한 조처다. 보수세력이 이를 한-미 동맹 파괴 시도라며 거세게 저항한 것은 오히려 우리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북한 핵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 9·19 공동성명(2005년)을 끌어낸 것은 큰 성과다. 2004년 12월 가동을 시작한 개성공단과 2차 남북정상회담(2007년 10월) 또한 한반도 관련 사안을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 체제는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권력의 창출·분배·실행과 직접 연관되는 정치 체제와 장기간 지속하는 경제·사회 구조로서 체제가 그것이다. 이 시기 체제 관련 담론 또한 둘로 나눠 볼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기된 ‘어떤 민주주의인가’라는 과제는 흔히 정치개혁으로 다뤄진다. 정부는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개정으로 답한다. 선거법을 바꿔 비례대표제와 선거공영제를 실시해, 선거 과정이 좀 더 투명해지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의석을 얻는다. 정당후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자금법은 정치와 관련한 돈의 흐름을 상당히 정화했으며, 정당법이 바뀌어 지구당 제도가 사라진다. 이런 개혁은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으나 뿌리 깊은 지역주의와 수구보수적 헤게모니 위에서 성립한 ‘87년 체제’의 한계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에 성립한 지구촌 규모의 경제·사회 구조다. 70년대의 불황기 이후 세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는 구실을 했으나 각종 불평등과 갈등을 심화하는 근본 원인이 된다.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정책을 ‘좌파 신자유주의’로 표현한 것은 이 구조의 개혁을 핵심 과제로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을 완화하고 대안을 찾는 것은 체제 담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데도, 수사적 언급으로 피해간 셈이다.

■ 2003~2007년 시기는 민주화 이후 정치·경제·사회·외교안보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방향 설정이 요구된 큰 전환기다. 해결하지 못한 이 시기의 담론은 이후 10여년간 모습을 약간씩 바꿔가며 되풀이된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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