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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화.들.짝] 백두산 효과

등록 2019-06-25 17:47수정 2019-06-25 18:49

백두산은 갈 때마다 새롭다.

여기서 백두산은 좁게는 중국 정부가 지정한 창바이산(장백산) 자연보호구(2151㎢)를 말한다. 설악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월악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 등 백두대간에 자리한 우리나라 국립공원 8곳을 모두 합친 면적과 맞먹는다. 넓게는 백두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대지를 형성한 수만㎢ 지역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4만3509㎢)의 많은 부분을 포함한다.

■ 백두산은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으로 사람과 물자를 끌어들여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백두산 효과’다. 접근이 자유롭지 않은 북한 쪽 지역은 일단 제외한다.

쉽게 눈에 띄는 게 관광객의 급증이다. 중국은 백두산 천지에서 20~30㎞ 지점을 막고, 북쪽·서쪽·남쪽 등 세곳에 산문을 설치했다. 관광객은 당국이 제공하는 차를 타고 정해진 곳만 갈 수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해 하루 관광객 수를 2만5천명 이내로 제한한다. 2005년 35만명이었던 관광객 수는 해마다 많게는 수십만명씩 늘어 2017년 2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내년에 2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북쪽 산문에서 자동차로 3시간 반 거리에 있는 자치주 수도 연길(옌지)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국제공항이 있는 이곳은 ‘백두산 경제권’의 중심지 구실을 한다. 인구가 지난 20년 사이 갑절로 늘어 70만명에 접근하고 있다. 서울의 두배가 넘는 넓은 땅에 새 건물이 많아 깨끗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자치주가 포함된 지린성과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을 합친 지역을 중국에서는 동북(둥베이) 3성이라고 부른다. 크기(81만㎢)가 한반도의 4배에 가깝고, 인구는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 1억1천만명에 이른다. 일제강점기부터 중공업 중심지이자 곡창지대였던 이 지역은 중국 남·동부가 선도한 개혁·개방 이후 발전이 뒤처지게 된다. 이를 가리키는 용어가 둥베이 현상과 신 둥베이 현상이다. 전자는 1980년대 중반부터 뚜렷해진 공업 부문의 정체를, 후자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대외 농산물 판매가 크게 줄어든 현상을 말한다.

이와 맞물려 실업자가 늘어나고 다른 지역으로 대규모 인구 유출이 생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의 한국행이 본격화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국 내 조선족은 지금 전체 외국인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동북 3성의 상대적 침체 속에서도 한국과 연관된 조선족의 활동은 자치주 경제의 유지·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자본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 최근 새롭게 인식되는 것은 백두산의 생태적 가치다.

생태 관찰과 식생 답사를 주요 목적으로 한 현지 방문이 늘고 있다. 독특하고 풍부한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의 자연은 크게 대략 해발 2천m 정도인 삼림한계선 위쪽의 고산기후 지역과 그 아래쪽 해발 수백m 지점까지 넓게 펼쳐진 용암대지 지역으로 나뉜다. 고산기후 지역도 여름에는 따뜻해 다양한 풀이 신비롭게 꽃을 피운다. 용암대지 지역은 강수량이 풍부해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삼림을 자랑한다. 산짐승, 새, 곤충도 풍부하다.

오랜 시일에 걸쳐 형성된 원시림이 눈 닿는 끝까지 펼쳐진 모습은 가슴이 탁 트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선구자> 노래에서 ‘일송정 푸른 솔’로 나오는 만주곰솔이 당당한 자태를 자랑하고, 남한에선 보기 쉽지 않은 잎갈나무와 가문비나무 숲이 흔하게 나타난다. 백두산 지역은 물을 좋아하는 온갖 버드나무들의 경연장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머니 이름이 왜 유화 부인인지 실감이 난다. ‘유화’는 ‘버드나무 꽃’이다. 연길 시내를 관통하는 강인 부얼하퉁허도 ‘버드나무 내’라는 뜻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곳곳에 형성된 늪지 식생이다. 식물체의 유기물이 수십㎝씩 퇴적돼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은 이들 늪지는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생태계를 형성한다. 시원한 바람 속에서 크고 작은 온갖 나무와 풀이 공생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들 늪지는 자연보호구 바깥쪽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백두산 지역의 생태와 식생은 백두대간을 통해 한반도로 이어진다. 앞으로 북한 지역이 개방되면, 압록강과 두만강의 북쪽에서 북동~남서로 달리는 창바이(장백)산맥과 백두대간의 교차점에 있는 이 지역의 가치가 더 커질 것이다.

■ 백두산 효과의 주된 수혜자는 중국·중국인이다.

백두산 관광객의 90% 이상이 중국인이며, 백두산 경제권도 중국인이 주도한다. 조선족이 자치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과거 40~50%에서 3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이 비율이 30% 밑으로 내려갈 10년쯤 뒤엔 자치주라는 지위를 잃을 거라는 예상도 무성하다. 한글과 한자가 함께 적힌 연길 시내의 거리 간판도 사라질 수 있다. 현지 조선족은 남북한과의 관계가 자신들의 삶에 상당한 변수가 될 것으로 여긴다.

백두산 효과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두만강 하구 지역까지 포함한 국제협력의 진전 여부다. 이와 관련해 최근 10여년 동안 중국의 두만강 유역 경제벨트인 ‘창지투(창춘-지린-두만강) 개방 선도구’와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역협력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등이 추진돼왔으나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장애물인 북한 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더라도 국제협력을 구체화할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백두산 관광과 관련한 북한 쪽과의 협력도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 백두산 지역은 자연과 경제뿐만 아니라 한·중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 국가 비전까지 교차하는 곳이다.

우리에겐 고구려와 발해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자 일제 시절 독립운동의 중심지이고, 중국으로선 역사상 최대 영토를 이뤘던 청나라의 발원지다.

백두산 지역은 과거 간도(북간도·동간도·서간도)라고 부르던 곳과 거의 일치한다. 수백년 전부터 조선인은 백두산 좌우의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을 건너 농사를 짓고 살아왔으며, 이에서 유래한 간도는 ‘개간한 땅’을 말한다. 이들에게 국내 하천에 불과했던 두 강이 국경선이 된 것은 이후의 일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조선족은 동북 3성에서 처음으로 이 지역에 벼농사를 정착시켰다. 동북 3성은 4개의 민족문화지역으로 나뉘는데, 가운데의 둥베이평원을 포함하는 한만농경문화구, 서부의 몽골초원유목문화구, 그 사이의 북방수렵문화구, 동남부의 조선인도작문화구가 그것이다. 백두산 지역은 바로 도작(벼농사) 문화구의 중심지다.

백두산 효과와 관련해 우리에게 중요한 요소는 백두산 자체와 더불어 오랜 고난의 역사를 체화하고 있는 조선족의 존재다. 민족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시대에, 이들은 한민족이자 중국인으로서 두 나라 교류·협력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 이들은 남북한과 함께하는 작은 통일을 이룬 경험을 바탕으로 다가올 통일 한반도 시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천혜의 자연과 함께 경계인의 정체성에 시달리며 꿋꿋이 살아온 사람들이 있기에 백두산은 더 새로울 수 있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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