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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비데 장관과 와인 장관 / 이순혁

등록 2019-06-30 18:31수정 2019-07-01 16:35

이순혁
정치사회 부에디터

상고하저.

요새 경제계에서 많이 나오는 용어다. 상반기에 높았다가 하반기에 낮아진다는, 우울한 경기전망을 축약해 보여주는 말이다.

이 용어가 딱 들어맞는 게 정치권에도 있다. 취임 초 높았다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바닥으로 추락한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 흐름이 그것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모든 대통령이 예외없이 이런 전철을 밟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이즈음 지지율이 45~50% 수준이면 비교적 선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상고’ 시절은 지났고, 이제 ‘하저’가 현실화할 것인지, 현실화한다면 그 수준이나 속도는 어떨지가 남아 있다.

전망은 밝지 않다. 지지부진한 민생경제 흐름과 보수언론들의 전방위 공세 등 정권 안팎의 어려운 요인들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인사 문제가 있다.

시계를 2년 전으로 돌려보자. 정권 초 ‘감동’은 인사에서 나왔다. 비외무고시 출신에 여성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 군의 잘못된 인사 정책과 싸우다 전역한 예비역 육군 중령 출신의 피우진 보훈처장 발탁 등이 대표적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한우물을 파온 재벌개혁 전도사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이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됐고,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청와대 경제사령탑으로 모셔와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선보이고자 했다. 기존 흐름을 깨고 뭔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이후로는? 김기정 안보실 2차장이 석연찮은 추문으로 하차하더니 안경환 법무부 장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가 잇달아 사생활, 음주운전 논란 속에서 자리를 내려와야 했다. 사퇴 행렬은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이유정 헌법재판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로 이어졌다. 그 뒤로는 일일이 꼽기에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정권 출범 뒤 두번째 인사부터 신선함이나 윤리성, 도덕성 그 어떤 기준으로도 감동을 준 인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뒤로도 널리 인재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훌륭한 이가 발탁돼 성과를 내면 자연스레 영입 과정의 뒷얘기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런 경우가 한명이라도 있었나?” 문 대통령과도 친분 있는 한 원로 인사의 얘기다.

결국 임기 후반기 ‘하저’가 현실화한다면, 이는 아는(믿는) 사람 또는 아는 사람이 추천한 이만 등용하는 알음알음 인사 탓일 가능성이 크다.

뭐가, 얼마나 문제냐고? 권력 향방에 가장 민감한 법조를 보자.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과 전국 검찰청의 인지수사(특별수사)를 총괄하는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수부장)은 모두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들이다. 그 시절 연줄로 현재 검찰 내부에서 최고 실세로 군림하며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이는 ‘내가 노무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유일한 검사잖아’, ‘세월호 사건 수사하느라 (당시 정권의 외압 때문에) 고생했지만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며 호가호위에 공치사를 한다는 소문이 서초동에 자자하다. 그의 눈에 잘 보이려 고개를 조아리는 검사들이 줄을 서고 있음도 물론이다. 최근 몇년 잘나가는 몇몇 고위간부를 두고서는 검사로서 쌓아온 성과나 태도가 아니라 ‘친문 핵심 실세와 고교 동문’, ‘대통령 신임이 두터운 참모와 대학 운동권 시절 선후배’ 등 누군가와의 연줄이 그 배경으로 언급되고 있다.

어디 법조뿐이겠는가. 전 정권 시절 한 경제부처 장관은 해외출장을 갈 때면 자신의 전용 비데를 챙기도록 해 내부에서 원성을 샀더랬다. 문재인 정권 출범 뒤 새로 취임한 장관님은 달랐다. 문재인 정부 인사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는 정권 실세와 학연(대학)으로 연결됐다던 새 장관님은 대신에 해외출장에서 귀국하는 길에 와인을 여러 병 사서, 세관 무사통과를 위해 수행원들이 각자 짐에 장관님 와인 한두병씩을 나눠 챙겨야 했단다.

그래도 비데 장관보다는 와인 장관이 낫지 않냐고?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너무 서글픈 비교우위 아닌가.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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