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미·중·일·러의 강압외교에 대처하는 자세 / 박현

등록 2019-07-28 18:37수정 2019-07-28 19:17

박현
신문콘텐츠부문장 겸 한반도국제에디터

미국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지난해 말 퇴임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미국 외교술의 비밀 하나를 공개했다. “어떤 것을 협상하려 할 때는 우선 상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상대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 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지 등. 그러고 나서 우리가 그들로부터 원하는 것을 취하고, 그게 그들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믿게 해야 한다.” 미국의 국익을 철저히 챙기면서도 정작 리스크를 떠안는 상대국은 그게 자국을 위한 것으로 믿게 한다니 참으로 요술방망이 같은 기술이다. 주지사 출신으로 외교에 문외한이었던 그에게도 신기했던 모양인지 그는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런데 이런 수법은 패권적 지위를 지닌 미국만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일 것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도 이런 외교술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2015년 사드 배치가 동북아에서 미-중 간 전략적 균형을 깨뜨린다는 논란이 불거졌을 때 미국은 이를 극구 부인했다. 대신에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방어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워싱턴에서 만났던 백악관·국무부 관리들도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에 좋은 것이니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한국에는 그들의 주장을 확성기에 대고 퍼뜨리는 친미 성향의 보수 언론·정치인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목표 달성은 한결 수월했다. 결국 ‘박근혜 청와대’는 이를 덜컥 수용했다.

대가는 컸다. 중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린 문제에는 인정사정없었다. 사드 배치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우리가 이익은 별로 얻지 못한 채 지정학적 리스크만 잔뜩 키우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까지 본 것으로 판명났다. 지난 25일 북한의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방어용’이라던 사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이 미사일이 사드의 요격을 회피할 수 있는 성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군수업체들 배만 불리고 안보 리스크만 더 키우는 게 군비경쟁의 속성이다.

동북아에서 미-중의 패권 경쟁은 일·러가 가세하면서 그 위험이 더 커지는 형국이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핵심 파트너로 자임하면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보통국가화’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를 달성코자 한국을 새 위협요인으로 부각시키려 수출규제라는 무리수까지 두고 있다. 중·러가 전례없이 동해에서 남중국해까지 연합 초계비행을 한 것은 2010년께부터 부각된 미·일 대 중·러 간 동북아 패권 경쟁이 본격화됐음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강대국들의 이런 강압외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는 핵심적인 국가 이익이나 주권이 걸린 문제에는 우리의 원칙을 세우고 적극 설득해야 한다. 다만, 강대국들에 동일한 원칙과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비합리적으로 반발하거나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싱가포르나 스위스 같은 소국이 강대국들 틈새에서 생존하는 비법이다. 초기에 결정을 미루며 우물쭈물하다 화를 키웠던 사드 배치는 대표적 실패 사례다.

둘째는 강대국들에 등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일본의 ‘성의있는 선조처’를 요구하며 대립각을 세우다 2015년 성격도 불분명한 10억엔을 받는 조건으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데 서명해준 ‘12·28 합의’가 그런 경우다. 아베 총리가 한국을 얕잡아 보게 한 계기가 됐을지 모른다. 미국의 사드 배치와 이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 조처에 속수무책이었던 점도 우리 정부의 나약함을 보여줬다. 이와 달리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경고사격은 우리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행동으로 여겨진다.

셋째는 최근 한-일 갈등의 단초가 됐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 문제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과 정부가 기금을 조성해 먼저 피해자들에게 지급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고, 나중에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북-일 수교를 염두에 두고 북한과 공조함으로써, 졸속 체결된 1965년 한일협정 개정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hy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1.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개같이 뛰고 있다’…쿠팡은, 국가는 무얼 했나 [6411의 목소리] 2.

‘개같이 뛰고 있다’…쿠팡은, 국가는 무얼 했나 [6411의 목소리]

비루한 엘리트들 [한겨레 프리즘] 3.

비루한 엘리트들 [한겨레 프리즘]

무너진 사법 위에 법치를 세울 수 있는가 [세상읽기] 4.

무너진 사법 위에 법치를 세울 수 있는가 [세상읽기]

쿠데타 군대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김연철 칼럼] 5.

쿠데타 군대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김연철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