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디터 몇년 전 폐질환을 앓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계시다 돌아가시기 직전 병원에서는 기도 삽관을 이야기했다. 의사는 삽관을 하면 막혀가는 숨을 더 쉴 수 있다, 그러나 이걸로 소생하시기는 힘들어 보이고 환자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님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부담감과 책임감 때문에 의사들이 받기 괴로워하는 질문을 우리 형제들도 던졌다. 의사는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도 우리 형제는 서로 다른 의견으로 언쟁을 벌였고, 결국 삽관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지인들의 가족상에 갈 때마다 습관처럼 돌아가시기 전 기도 삽관을 했느냐고 물었다. 했다는 답을 들으면 이상하게 죄책감이 올라왔다. 암이 흔해졌다고 하지만 암 같은 큰 병을 선고받거나 고통스러운 투병을 지켜보는 건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병이 위중해질수록 의사의 한마디에 더 매달리게 되지만 바쁜 의사에게 고마울 때보다 서운할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호자로서 내려야 하는 수많은 판단의 순간에 허둥대다가, 환자가 고인이 되고 나면 늘 그게 최선이었을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후회가 사무친다. 최근 읽은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가족이나 자신의 병,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와닿는 책이었다. 작가는 암 전문의이면서 어린 시절 젊은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경험이 있는 환자 가족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의 형식을 띠고 있다. 저자가 중학교 때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1년여간 투병하면서 엄마와 함께 쓴 병상일기가 아버지 사후 책(<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1992)으로 나왔는데 어머니는 책이 나온 뒤 간병인으로 겪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써놓은 게 후회되어 집의 책들을 다 갖다 버렸다고 한다. 저자는 나중에 의사가 되어 절판된 그 책을 구해 읽으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환자로서 아버지가 느꼈던 의사에 대한 서운한 감정과 간병인으로 지친 엄마의 심정 등을 곳곳에 인용한다. 그리고 당시 죽음을 앞둔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연합고사를 잘 봐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열여섯 소녀가 사십대의 의료인이 돼서 절박한 환자를 앞에 둔 의사의 입장에서 당시를 복기하고, 환자와 가족의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요즘의 상황을 교차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에피소드 중에 인상적인 대목 하나.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진행된 50대 남자의 부인이 병원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갖가지 치료법을 시도한 환자라 난색을 표했음에도 환자가 이 병원에 너무나 오고 싶어 한다는 보호자의 반복된 요청에 입원을 지시할 수밖에 없었지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데 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침상을 빼앗는가, 회생 가능한 환자를 다루기에도 부족한 의료진의 노동력을 왜 낭비해야 하는가, 국민들의 혈세인 건강보험공단의 돈을 왜 낭비하는가 등등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리를 헤집었지만 막상 침상에 누운 환자의 눈을 보는 순간 그 눈 속에 담긴 간절함, 안도감 등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바뀌었다. 물론 이것이 공정한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지만 의학의 가치를 ‘병’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 아픈 환자와 가족의 안녕과 행복에 둔다면 환자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것 역시 의사의 일이며, 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불안을 경감하는 것까지 의료 체계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온갖 기구를 온몸에 꽂고 마지막 순간까지 기적을 바라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방식에 대한 회의감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명치료 거부 등록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오랜 기간 중환자를 지켜봐야 했던 가족들은 알고 있다. 단지 죽기 직전의 고통 경감뿐 아니라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완치와 불치를 떠나) 덜 고통스럽게 병과 싸우고 더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를 할 때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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