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천주교 전래 과정은 독특하다. 선교사가 온 것도 아닌데 조선의 지식인들끼리 신분 질서를 위협하는 ‘불온이론’을 몰래 ‘스터디’했다. 냉전 시절 운동권 이론이 수입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말도 있다. 종교적 의미를 빼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공안당국’의 대응도 닮았다. 수많은 사람을 검거하고 고문하고 처형했다. 이들 중 신원이 확인된 103명을, 로마 교황청은 훗날 ‘성인’으로 지정했다. 가톨릭에서 이들을 기념하는 ‘축일’이 9월20일이다.
성 김아기의 이야기에 내 눈길이 멈춘다. 친정 언니를 따라 김아기도 ‘지하서클’에 들어간다. 그러나 ‘학습’의 첫걸음인 기도문을 외우지 못한다. 그래서 세례도 받지 못한다. 천주교인이 대규모로 검거되던 1836년에 김아기도 잡혀 들어간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김아기는 ‘전향’을 거부한다. ‘이론’도 모른 채 ‘신념’을 지킨다. 교인들은 마침내 김아기를 ‘동지’로 인정한다. 감옥에서 세례를 받고(세례명은 아가타) 1839년에 처형당한다. 김아기에게, 또 이름마저 잊힌 죽은 이들에게 ‘이론’은 어떤 의미였을까. “4월혁명과 1980년 광주항쟁 때 제일 많이 죽은 이들은 학생이 아니라 신문팔이와 구두닦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서중석 선생의 말이 떠오르며 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