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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구조화된 특권과 교육개혁 / 양선아

등록 2019-10-09 20:00수정 2019-10-10 16:24

양선아
사회정책팀장

“울산대 앞에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서명 캠페인을 한 적이 있어요. 지방대이니만큼 이 법에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의외로 반대하는 쪽에 학생들이 스티커를 많이 붙이더라고요. 법에 대해 설명을 해줬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스카이 대학 나온 애들은 그만큼 성실하고 머리 좋고 실력 좋으니 특별대우 받는 것이 공정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겁니다. 도대체 우리 기성세대는 이 젊은 지방 대학생들에게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특권 대물림 교육체제 중단 국회 토론회’에서 한 학부모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문제로 교육 불평등과 입시의 공정성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관련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다수는 이 학부모가 언급한 ‘지방이라서 받는 차별 사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올라간다’, 지방은 ‘내려간다’고 표현하는 사람들, 지방에서 서울권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면 그 부모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문화, 서울에서 살다 여유와 행복을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 살겠다는 딸에게 “너는 패배자”라고 말하는 엄마가 등장하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 지방과 지방대에 대한 차별 의식은 이렇게 일상적으로 표출된다. 그로 인해 지방 사람들은 열등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차별적 의식마저 내면화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지방 학생들이 “서울에 사는 것만으로도 특권”이라고 말한다는 대목에선, 나 역시 ‘특권’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 출간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는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도 차별을 전혀 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만 공정함을 따지기 때문에 누구나 편향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가진 특권을 알아채지 못하는 개인은 차별 행위를 하게 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마저도 그 질서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된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에서 고착화된 불평등 구조는 무엇인가.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심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존재한다. 대학 서열화 구조로 대학 간 격차는 여전하고, 이명박 정부 이후엔 자율형사립고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고등학교마저 서열화됐다. 이런 구조에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차별을 경험하고 차별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서울, 정규직, 스카이 대학, 특목고·자사고 등을 향해 매진한다. 결국 소수의 사람만 상위를 차지할 수 있는데, 차별적 구조 자체를 깨려 하기보다 제로섬 게임에서 공정한 규칙만 따진다.

조국 사태 이후 정부나 정치권에서 현재까지 내놓은 교육개혁 방안들을 살펴보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 강화’ ‘고교 서열화 해소’ 정도다. 일부 국회의원은 학종의 공정성이 확보될 때까지 정시를 더 늘려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얼마나 협소하고 안이한 인식인가.

국민들이 원하는 교육개혁은 단순히 대입제도를 조금 손질하는 정도가 아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교육제도를 통해 부모의 직업, 출신학교, 경제력 등과 같은 특권이 자녀에게 대물림된다고 보고 있다. 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대입제도 개편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오랫동안 고착화한 불평등 구조는 한번에 해결할 수도 없고, 하나의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진정한 교육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근본적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라. 교육 불평등 지수를 개발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정책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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