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석 ㅣ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과학기술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기초과학과 기계공학, 전자공학, 의학, 농학 같은 응용과학을 아우르는 표현인 과학기술은 현대사회와 인류 문명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과학입국’(科學立國)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을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잡고 있다.
그런데 역대 정부 조직표를 보면, 현재는 과학기술의 한 분야로 생각되지만 과거에는 독자적인 부처를 통해 지원되던 분야가 있다. 원자력 분야가 그렇다. 1959년 개원한 ‘원자력원’은 장관급 대통령 직속 기관이었다. 원자력원은 연구용 원자로의 도입 및 가동, 원자로를 이용한 각종 실험과 연구를 지원하는 업무를 진행했다. 1967년 원자력청으로 개편될 때까지 원자력원은 우리나라 초창기 원자력 연구에 큰 역할을 했다. 경제기획원이 신설된 것이 1961년의 일이고, 과학기술 전체를 진흥하는 업무를 맡은 과학기술처가 신설된 것이 1967년이니 1950~60년대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 분야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해묵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그동안 우리 정부는 ‘주요 현안’일 경우 대개 이를 위한 인력과 조직을 갖춰왔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기술 업무를 총괄하는 부처의 이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다. 정보통신 분야는 공학 중 한 부문에 지나지 않지만, 그동안 과학기술 전체와 비슷한 대접을 받아왔다. 지금도 단순히 이름만 뒤섞은 것이 아니라 제1차관이 과학기술 전반 업무를 맡고 제2차관이 정보통신에 집중된 업무를 맡는 식으로 사실상 2개의 조직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그만큼 정보통신 분야에 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여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잘 알고 있다’고 답한다. 세계적으로 ‘기후비상사태 선언’ 흐름이 이어지자, 국내에서도 선언에 동참하는 사례가 하나둘 늘고 있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알지만 행동하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그렇다. 온실가스와 기후변화 문제가 언급된 지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온실가스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기 바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발표한 ‘2020년 경제정책 방향’ 첫머리에 ‘석유화학공장 건설’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열광하지만, 정작 기후 정책은 그대로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남들 온실가스 감축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무임승차할 수 있을까’에만 관심이 있다.
국가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문제 특성을 고려할 때 정책 변화나 역량 투입은 모두 민망한 수준이다. 현재 온실가스나 기후 문제를 담당하는 부서는 환경부의 국장급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말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면, 이를 확인하는 지표는 ‘인력과 예산’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기존 화석연료 산업에 종사했던 노동자와 산업계를 설득하려면 시간과 노력, 전략도 필요하다.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컨트롤타워’와 실행기구의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여러 정부에서 ‘기후에너지부’를 검토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채 100달러도 되지 않던 1950년대, 대한민국은 원자력원을 세워 핵에너지 연구개발에 국력을 쏟아부었다. 60년이 지난 지금, 전세계는 기후위기 극복을 외치며 에너지 전환에 대규모 재정 투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는 단순한 ‘환경보존’을 넘어 새로운 ‘산업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우리의 계획은 무엇인가? 기존 관성과 부처 간 이견에 묻혀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행어처럼 ‘위기’와 ‘변화’라는 말만 늘어놓을 뿐, 정작 실행을 위한 계획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꼭 한번 되돌아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