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인 ㅣ 국제뉴스팀장
‘코로나19, 그 후’를 말하기엔 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코로나19가 중국과 아시아에 이어 유럽을 휘젓고 있지만, 미국 등지에서의 확산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구촌 곳곳의 좋지 않은 예후들은 ‘그 후’를 걱정하게끔 한다.
전염병 같은 인류의 큰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경험은 역사적 기억으로 각인돼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할 때 강력한 항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외교적인 치장마저 걷어치우고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지금의 국제사회 현실을 지켜보노라면, 이런 기대가 사라진다. 빌 게이츠가 지난달 28일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기술적 해결책을 넘어 국제공조와 데이터 공유를 추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고언을 했지만, 각박해진 국제정치 현실 앞에서 울림은 멀리 퍼지지 않았다.
코로나19 발발 시점이 좋지 않았다. 세계적인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관료주의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공조를 주도해야 할 미국과 중국은 지난 1월 가까스로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했지만 전략적 불신은 여전히 깊다. 그러다 보니 초기엔 코로나19의 정보 공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티격태격하기 바빴다. 미국의 11월 대선, 일본의 도쿄올림픽, 이란의 총선 등과 같은 정치 일정도 방역 전문가들의 입지를 약화시켜 냉정한 대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코로나19가 중국을 휩쓸던 지난달, 미국이 중국에 ‘총공세’를 편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체류한 외국인에 대한 전면적 입국금지를 앞장서서 취했다. 무엇보다 지난달 중순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미국은 미-중 간 ‘기술 냉전’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아 하는 영국 등 유럽국가들을 상대로 화웨이를 배제하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5일 공개적인 언론브리핑에서조차도 “우한 바이러스의 확산”이라며 ‘우한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거두지 않았다. 중국에 대한 평판을 악화시키겠다는 의도 말고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9일(현지시각), 트럼프 미국 행정부 관리들이 이번 위기를 국경 봉쇄와 중국 고립의 호기로 본다고 전했다. 미국의 대중국 공세가 단순한 음모론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미국은 청정구역’이라는 자신감을 전제로 한 이런 전략은 계산착오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확진자는 1천명을 넘어섰다. 미국 의료체계가 코로나19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팽배해 있다. 코로나19는 특정 질병이나 특정인 치료에 특화된 선진 의료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 의료체계의 허점을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영국 <가디언>은 시카고대 등의 2018년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인의 44%는 아프거나 부상을 당해도 의사를 찾지 않는다고 전했다. 의료보험이 없거나 본인 부담 금액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취약성을 드러낸 각국의 리더십은 ‘외부의 희생양’을 찾으려는 욕구가 훨씬 강해질 것이다. 당 지도부에 대한 중국의 민심은 아주 민감성이 높아졌다. 중국 정부와 언론매체의 ‘미국 때리기’는 손쉬운 해결책으로 등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 공산당은 천안문 사태 이후 약해진 정통성을 벌충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 기반으로 삼았고, 장쩌민 당시 주석이 보인 대일본 강경 행보는 중-일 관계를 오랫동안 냉각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고립주의 경향을 심화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할수록 이민 정책이나 중국 정책, 방위비 분담 문제 등에서 더욱 강경한 대외 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한국·일본 등 주변국에 ‘매력 외교’를 펼치며 미국에 역공을 가할 것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대응 실패로 간 나오토 총리를 필두로 당시 일본 민주당 세력은 정치적인 존립 기반을 아예 잃어버렸다. 이는 보수적인 아베 신조 정권이 장기집권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아베 정부가 취할 대외 정책을 경계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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