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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조국 교훈’ 잊은 위태로운 민주당 / 석진환

등록 2020-03-18 18:06수정 2020-03-19 09:34

석진환 ㅣ 정치팀장

2주 정도 지나면 서울 여의도 윤중로엔 성급한 벚꽃들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 꽃들이 활짝 열려 절정에 이를 때쯤, 이번 총선에서 여의도를 향해 열심히 뛰었던 이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안타깝지만 ‘선수’의 절반 이상은 만개한 여의도 벚꽃을 볼 수 없다. 그 희비가 무엇으로 갈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과거에도 언론의 총선 전망은 번번이 빗나갔다. 민심은 벚꽃잎만큼이나 가볍고 부드럽다가도 차돌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변한다. 코로나19가 모든 일상을 삼켜버린 지금, 무엇이 민심을 흔들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온 나라가 방역에 힘을 쏟고 있어 지금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막힌 일들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무관심을 틈타 그들만의 몰염치와 꼼수, 이기적인 정치공학이 노골적으로 진행 중이다.

정치 퇴행이다. 가진 것 많은 두 부자(富者) 정당이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맺은 또 다른 부자(父子) 정당으로 분화해 선거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유권자의 선택을 멋대로 예단하고, 극단적 지지자들을 자극해 갈등을 부추기고, 기득권 유지를 위해 명분도 가치도 외면한다.

이런 퇴행의 책임에서 보수 야당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판이 이 지경에 이른 가장 큰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벌이는 부자간 싸움은 꼴사납다. 그래도 이 집안은 일관성이라도 있다. 선거제 개혁 법안에 반대했고, 표결에 불참했다. 자신들이 반대한 법안을 무력화하려고 위성정당 창당을 공언했고, 그대로 실행했다. 가세가 기울었던 ‘악당 가문’이 이제 살 만할 것 같으니 다시 밥그릇 싸움 하는 수준이다.

민주당은 어떤가. 민주당은 지난해 패스트트랙을 통해 선거제 개혁 법안 통과를 주도한 정당이다. 선거법 설계와 협상도 민주당이 이끌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사활을 걸었던 선거법을 한번에 걷어찼다. 위성정당을 만드는 통합당을 향해 민주당이 퍼부었던 비난을 다 열거하기도 버거운데, 이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악당 가문’과 똑같이 한다. 말을 뒤집으면서도 창피해하지 않고, 그저 야당 핑계만 댄다. 괜찮은 소수정당 대부분을 제쳐놓고도 “소수정당 원내 진입을 돕기 위한 결단”이라는 내로남불식 자기 기망도 스스럼없다.

개인적으론 최근 민주당이 보여주는 이런 행보가 여러모로 조국 사태의 어떤 지점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 때 뼈저리게 겪었던 교훈이나 중요한 성찰의 지점을 민주당은 지금도 놓치고 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실망했던 건 진보·개혁 진영의 이중성을 봤기 때문이다. 수구 기득권을 비판하며 진보하려면 엄격한 자기 관리와 일관된 판단 기준, 한결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없다고 느꼈다. ‘아닌 척 고고하게 굴더니 실은 너희도 똑같네’라는 생각이 들면 더 분노하고 낙담할 수밖에 없다.

이번 민주당 위성정당 사태를 보며 사람들은 ‘너희도 똑같네’라고 느낄 것이다. 원칙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슬그머니 변칙을 택하고, 연동형 비례제의 가치를 지키고 싶은데 상대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고, 의석수 욕심 없다면서 챙길 건 다 챙기려고 하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에겐 오류가 없다고 한다. 그사이 개혁의 성과라던 새 선거법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민주당은 그 흔한 유감 표명조차 없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어떤 논란이 불거지면 그 논란의 내용보다 그 사안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로 평가받는 일이 많다. 실수와 오판을 했어도 크게 반성하고 사과하면 그걸로 끝날 수도 있다. 차악을 택해야 한다면 국민에게 또는 상대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고 성실하게 문제를 풀어가면 될 일이다. 지금 민주당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보수 야당이 연이어 실점하며 부족한 리더십 탓에 갈팡질팡하지만, 민주당도 조만간 야당에 반사이익을 줄 게 뻔하다.

얼마 전 “이번 총선은 누가 더 겸손한가의 싸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진심을 다해 100% 동의한다. 민주당은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해 깊이 사과하고, 유권자들이 진정성을 느낄 만한 자기희생의 결단으로 유권자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많은 민주당 후보들이 벚꽃 구경은커녕 차돌 같은 민심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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