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검언유착’ 의혹 이후 달라져야 할 취재윤리

등록 2020-04-21 17:32수정 2020-04-22 02:35

[한선의 미디어전망대]

문득 떠올랐다. 수습기자 시절 무용담처럼 전해지던 선배들의 취재 이야기. 경찰서나 관공서를 출입하면서 필요하다면 담당자가 작성하는 문서를 슬쩍 훔쳐보는 것은 기본이고 급하면 찢어서라도 와야 한다는 사뭇 진지했던 조언.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범법 행위도 서슴지 말라는 얘기였지만 어린 수습기자에게는 유능한 기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벌써 수십년 된 기억인데 <채널에이(A)>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건을 지켜보면서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근래의 뉴스룸 관행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해졌다. 세간의 날 선 비판처럼 디지털 미디어환경에서 취재윤리는 오히려 퇴행하기만 하는 것일까?

뉴스룸 관행은 기자가 자신이 속한 조직문화를 습득하고 어떤 것이 기사가 되거나 되지 않는지 뉴스생산에 관한 암묵적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언론인들이 전문직업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자적 감각’과 ‘취재윤리’를 훈련하는 절차이자 학습 과정이다.

전통적으로 저널리스트는 성직자나 의료인 못지않게 고도의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도 직무수행 때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지 가늠해보는 질문을 제시하면 철학자, 이론가, 의료인에 이어 언론인이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된다. 사회적 요구는 물론 언론인 스스로도 윤리의식을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상적인 가치 수준에서는 취재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령 웬만한 언론사라면 모두 보도준칙과 윤리강령과 같은 윤리적 덕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구체적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 기자들이 취재윤리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연구 결과만 하더라도 그렇다. 지난해 한 연구진이 2003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언론인 의식조사 결과 데이터를 활용하여 분석한 연구를 보면, 기자들은 취재를 위해서라면 취재원을 괴롭히거나 실정법규를 위반하는 것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보도를 위해서라면’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신분 위장이나 문서 절도 등 취재 과정에서 실정법규를 위반하는 것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또 불법적이지 않은 선에서 취재원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불법적이지 않은 선이라는 기준도 모호하지만 취재 결과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거나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라고 인식하는 순간 윤리적 기준선이 훨씬 낮아진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한국 기자들의 취재윤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준다.

<채널에이>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건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날 것인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을 개인적 일탈로 결론지어서는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취재윤리 위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단방약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직문화의 변화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취재윤리 위반에 관한 법규를 강화하거나 회사의 정책 유무를 따지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선후배나 동료 사이에 관행을 되짚어보고 성찰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가능한 조직문화. 더 중요하게는 수용자들의 감시와 지적에 열려 있는 조직문화와 시스템. 그것이 코로나 이후 언론에 요구되는 뉴노멀의 시작이다.

한선 ㅣ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문 정부 대북 정책 “평화 로비”라는 대통령실, 윤 정부는 그간 뭘 한 건가 1.

[사설] 문 정부 대북 정책 “평화 로비”라는 대통령실, 윤 정부는 그간 뭘 한 건가

[사설] 권력 눈치본 검사들 대놓고 발탁한 검찰 인사, ‘김건희’ 수사 말라는 신호인가 2.

[사설] 권력 눈치본 검사들 대놓고 발탁한 검찰 인사, ‘김건희’ 수사 말라는 신호인가

25년 경력단절을 넘어서 [6411의 목소리] 3.

25년 경력단절을 넘어서 [6411의 목소리]

[사설] 정부 비판 기자회견에 대관 취소한 언론재단 4.

[사설] 정부 비판 기자회견에 대관 취소한 언론재단

서서히 옛말이 되어갈 명절 증후군 [유레카] 5.

서서히 옛말이 되어갈 명절 증후군 [유레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