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식당에서 혼밥을 먹는데 숟가락질을 두번 해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늙으면 입이 벌어지지 않아서 밥을 못 먹게 된다는데, 그때가 왔구나 싶어서 입가를 만져보았더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먹으려 했으나, 심란해서 넘기기가 어려웠다. 집에 와서 얘기했더니, 아내는 웃으면서 슬퍼했다.
밥을 먹는다는 동작은 문명과 야만의 기저에, 인간의 영혼과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우아한 식당에서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먹어도 다 마찬가지다.
내가 어렸을 때는 전쟁고아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끼니때마다 깡통을 찬 거지 아이들이 문 앞에 와서 “밥 좀 줘”라고 외쳤다. 나의 집은 밥이 남지 않아서 거지에게 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또래 거지 아이들의 구슬픈 외침 소리를 들으면서 내 밥을 먹었다. 그 어린 날의 당혹감과 슬픔은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내가 자라서 김수영 시인의 산문에서 “길가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신문 파는 불쌍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 왜 저 애들은 내 자식만큼도 행복하지 못한가 하는 막다른 수치심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나는 40여년 동안을 문자 그대로 피해 살기만 한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나는 그 시인의 무서운 고뇌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숟가락질에 실패한 식당 문짝에는 ‘긴재 사용 가능’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긴재(긴급재난지원금)가 풀리니까 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식당 주인은 밥을 팔아서 밥을 먹는다. 사람들의 밥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나서 슬프다. 늙어서 슬프면, 진짜로 슬프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