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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칼럼] 네거리의 짜증 / 김훈

등록 2020-11-16 04:59수정 2020-11-16 09:28

서울 종로구 주변 도로에 가로등과 신호등 등 각종 전기시설물이 늘어서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서울 종로구 주변 도로에 가로등과 신호등 등 각종 전기시설물이 늘어서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후배가 운전하는 소형차를 타고 동네 네거리를 지나는데, 앞에서 비싼 외제 승용차가 신호대기 하니까 후배는 멀리서부터 설설 기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긁기만 해도 한 달 월급이 날아가거나 보험료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들에게 물어봤더니, 짬뽕 국물 식기 전에 가려고 자동차들 사이를 빠져나갈 때도 벤츠나 람보르기니, 벤틀리 옆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싼 차가 그 운전자의 100% 과실로 싼 차를 들이박았다면, 비싼 차 운전자는 아주 싼 값을 물어주거나 보험처리하면 된다.

주차장에 세워놓은 비싼 차를 고의로 때려 부수었다면 마땅히 비싼 값을 물어주어야 할 테지만, 도로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대등한 자격으로 운행하다가 발생한 사고에서 배상액이 이처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나는 긍정할 수 없었다. 도로에는 주인이 없는데 아파트 한 채 값에 해당하는 비싼 차를 공적인 공간으로 몰고 나와서 다른 운전자들을 심리적으로, 공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이나 세금은 왜 없는가. 동일한 과실에 대해서 어째서 배상액은 이처럼 차이가 나는가. 도로의 공적 개방성은 무엇이고, 도로에서 비싼 차는 우월적 지위를 갖는가.

도로교통법과 시행령을 다 찾아보았으나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는 몇몇 법률가에게 물어봤더니, 복잡한 법률이론과 보험이론을 들이대면서 나의 질문은 성립할 수 없고, 내 생각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 짧은 글도 신문사에 보내지 말라고 그랬다. 이래서 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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