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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칼럼] ‘울며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 김훈

등록 2020-06-22 05:01수정 2020-06-28 16:20

6·25 전쟁 70주년이 되었다. 나는 박명림 교수의 저서 <한국 1950 전쟁과 평화>(2002, 나남)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박 교수는 이 저서에서 민족의 죄악을 수사하는 검사처럼 전쟁기간 중에 자행되었던 학살과 잔혹행위를 증언하고 있다.

이 전쟁은 적대세력의 종자를 말살하려는 절멸주의의 전술로 전개되었다. 국군과 인민군은 인명의 ‘손실’을 아까워하지 않고 싸웠고, 점령지에서 ‘적성’으로 분류되는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했다. 진주하면서 죽였고, 후퇴하면서 죽이기를 반복했고, 전선이 밀고 밀릴 때마다 죽였다. 전투 지역에서 죽였고, 후방에서 죽였고, 마을과 평야, 군부대와 교도소에서 죽였다. 죽여서 구덩이에 묻고 저수지에 던졌다. 이 살육은 전투행위가 아니라, 점령지를 청소하기 위한 행정조치처럼 보인다.

전세가 역전될 때마다 여러 도시와 농어촌, 산간 마을에서는 민간인들끼리 서로를 적대세력으로 분류해서 죽고 죽였다. 수천년을 이웃해서 평화롭게 살아온 향촌 사회의 밑바닥에 그처럼 무서운 증오와 원한이 억압되어 있었고, 그 적개심이 마그마처럼 분출하는 모습을 박 교수는 고통스러운 자료를 제시하면서 증언하고 있다.

이 모든 야만성은 외세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한민족이 스스로 자행한 죄악이다. 객관성을 지탱해야 하는 학자의 고뇌를 말할 때, 박 교수의 글은 참혹하다.(서문 참조) 전쟁이 끝나고 나서, 그 증오와 적개심 위에 남북 양쪽의 체제가 들어서서 적대하는 70년이 흘렀다. 나는 이 책이 한민족이 후세에 전하는 참회록으로 읽히기 바란다.

박 교수는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성서 시편 126장5절) 심정으로 그 광풍의 시대를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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