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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역사다] 생활인 바흐와 천재 바흐 / 김태권

등록 2020-07-30 17:44수정 2020-07-31 02:39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685~1750)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685~1750)

바흐가 어중간한 실력의 음악가라고?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때 사람들 생각은 그랬다. 북스테후데나 텔레만 같은 음악가는 일등급, 바흐는 그만 못한 작곡가로 쳤다. 나이가 들어 바흐도 자리를 잡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세상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시대를 앞선 천재라 외로웠을 거라고? 그때 사람들 생각은 반대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기교파 음악가라고 바흐는 비판받았다. 세상에 자신을 알릴 기회를 얻지 못한 불운한 음악가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아무렇든 음악을 해서 평생을 먹고살았으니.

두 번 결혼해 자녀를 스무 명 얻었다. 먹여 살릴 식구는 많은데, 봉급은 어중간했고 근무조건은 못마땅했다. 바흐는 새 일자리를 알아보느라 바빴다. 좋은 자리가 나면 하던 일을 그만두고라도 옮겼다.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제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태업을 하기도 했다. 물론 바흐 생각대로만 일이 풀리지는 않았다. 1716년에는 ‘명령불복종’으로 한 달 동안 감옥에 갇혔고 1730년에는 ‘직무태만’으로 감봉을 당했다. 나중에는 바흐도 수완이 늘었다. 자기 고용주보다 높은 사람에게 작품을 헌정해 고용주를 압박하는 법도 배웠다. 생활인으로 ‘만렙’을 찍은 셈.

말년에는 시대에 신경 쓰지 않고 바흐 자신을 위한 음악을 했다. 자기 이름 “바흐”로 곡도 썼다. 바흐의 철자인 “B-A-C-H”는 독일 음계로 “내림나-가-다-나”인데, 네 음을 쌓아올려 신비한 곡조의 푸가를 짓다가, 미처 곡을 마치지 못한 채 1750년 7월28일에 숨졌다. 무덤에 묻힌 날이 7월31일. 그가 천재였음을 세상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생활인 바흐가 분투한 덕분에 천재 바흐가 작품을 남긴 것은 아닐까 하고.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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