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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일방통행 익숙해진 대통령의 소통 / 석진환

등록 2020-08-12 18:15수정 2020-08-13 09:20

석진환 ㅣ 이슈 부국장

2015년 봄, 정치부 기자로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담당할 때 언론 연구 잡지인 <관훈저널>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잡지에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라는 큰 주제 아래 몇편의 글이 특집으로 실렸다. 당시는 3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셀 때였다. 나는 ‘정부수립 이후 대통령 기자회견 변천사’를 주제로 썼다. 2~3명의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기자회견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소통의 역사를 간략히 살피는 내용이었다. 옛날 신문을 뒤져가며 얼기설기 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한민국 기자들은 대통령이 인터뷰를 피한 채 1년에 딱 한번 기자회견을 해도 별문제 없이 넘어가는 사회에 산다. 기자들은 나라의 주요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모른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걸 대신 물어볼 수도 없다.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 때 내놓은 일방적인 말을 통해 그저 짐작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 이젠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게 당연한 것이었나?’ 판단력에 마비가 올 지경이다.”

5년 전에 썼던 조악한 글을 다시 찾아본 건, 지난 10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의 수석·보좌관회의 발언을 접한 직후다. ‘이건 좀 아닌데…’라는 답답함과 갈증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 시작 직후 부동산 문제에 관해 원고지 11장 분량의 긴 발언을 했다. 대체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아가려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서 나는 어떤 안도감이나 든든함 같은 걸 느끼지 못했다.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대통령의 성급한 말을 비판했다. 하지만 내가 대통령의 말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 건 그보다는 형식 탓이 더 컸다.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해 듣고 묻는 언론이 아닌, 참모들을 앞에 앉혀두고 현안과 관련된 중요한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는 이상한 형식 말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질문은 받지 않아도 된다. 과거에도 이런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도 일상이 돼버린 듯해 씁쓸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한 바 있다. 취임 일주일 전 텔레비전 토론회에선 “대변인에게만 맡기지 않고 오바마 대통령처럼 직접 나서서 수시로 브리핑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적도 있다. 물론 청와대 춘추관이 하루아침에 백악관 브리핑룸이 될 순 없다. 문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처럼 마이크를 자주 잡는다면 ‘대통령이 매일 언론플레이만 한다’고 벌떼같이 들고일어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껏 문 대통령의 소통 성적은 너무 초라하다. 이대로라면 박근혜 정부보다 기자회견 한두번 더 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 방송 대담, 국민과의 대화처럼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핵심 현안에 관해서는 직접 브리핑하고 질문도 받아야 한다.

부동산 문제가 바로 그런 핵심 현안이었다.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많은 국민이 상실감과 무력감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중차대한 사안이다. “횡포”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관련 법안까지 통과시킨 뒤였으니 더더욱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고 질문을 받았어야 했다.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어떤 것인지, “오른 세금이 세입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언론의 엄포를 대통령은 어떻게 보는지 국민은 궁금해한다. 질문과 대답의 과정에서 실책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도 있다. 진심으로 이해를 구하면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는 말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앞으로라도 기자들에게 더 많은 질문 기회를 줬으면 한다. 백악관 최장수 기자로 유명한 헬렌 토머스의 말이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이 알게 하고, 국민의 생각을 대통령이 알게 한다.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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