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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역사다] 대지를 살리고 떠난 아프리카의 여성 / 김태권

등록 2020-09-24 19:00수정 2020-09-25 02:09

환경·여성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1940~2011)
환경·여성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1940~2011)

“아프리카, 여성, 최초.” 왕가리 마타이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다. 1971년에 아프리카 동부와 중앙 지역을 통틀어 여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땄고 최초로 대학교수에 임용됐다. 2002년에는 케냐 최초의 민주적 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 나중에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환경운동가가 평화상을 받은 일도 최초.

평생 주목받은 삶이다. 그 영향력을 좋은 일에 썼다. 독재정권에 맞서고 무분별한 개발에도 항의했다. 1977년에 그린벨트운동을 시작했다. 나무를 심는 시민운동이다. 여성운동이자 빈곤퇴치운동이기도 했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시절 이후 플랜테이션 농업을 한다며 숲을 밀어버렸다. 그 뒤 가뭄과 큰물이 갈마들며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울창한 숲은 남성이 베어냈지만, 황폐한 땅에서 땔감과 마실 물을 구하는 일은 여성이 떠맡았다. 무겁게 이고 지고 몇킬로미터씩 걸어야 했다. 그린벨트운동을 소개하는 2018년 <한겨레> 기사의 제목은 “‘말라버린 땅’의 저주는 여자들에게 퍼부어졌다”였다.

80년대와 90년대에 나무를 심으며 상황이 나아졌다. 말랐던 우물에 물이 찼고 땔감으로 쓸 나무도 돌아왔다. 비옥해진 땅에 텃밭을 가꾸며 먹을 것도 풍족하다. 묘목이 자라면 그린벨트운동은 그루당 1달러씩을 주었다. “그린벨트운동은 농촌 여성들이 겪는 삶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출발했다.” 지역 책임자의 2005년 인터뷰다. 1999년부터는 지역 여성의 창업을 지원하는 2단계 사업도 전개한다.

성과는 대단했다. 2004년에 노벨상을 받을 무렵 3천만그루를 심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심은 나무는 5천만그루가 넘는다. 왕가리 마타이가 세상을 떠난 날이 2011년 9월25일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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