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ㅣ 사회부장
어떤 개혁이든 저항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검찰의 저항은 그 어떤 집단보다 거세다. 기소독점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에 메스를 들이대려면 검찰의 칼(수사)을 견뎌낼 수 있는 맷집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검찰의 역공을 막아내고 개혁에 성공하려면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1년 전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의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검찰개혁의 아이콘을 자처했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말로만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제멋대로 요리할 수 있는 약점이 많았다. 자녀의 ‘입시용 스펙’부터 ‘가족 펀드’ 논란까지 도덕성 시비를 일으킬 수 있는 약점이었다. 더욱이 그가 민정수석이 되기 전에 자기 입으로 통렬하게 비판했던 것이라서 ‘내로남불’로 욕먹기에 딱 좋았다. 그런 처지에 검찰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으니 검찰 내 최고의 요리사인 윤석열 사단한테는 우습게 보였던 것 같다. 윤 사단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에 나서면서 ‘누가 누구를 개혁하겠다는 거냐’고 비아냥거렸다. 검찰개혁의 아이콘은 그렇게 몰락했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도 길을 잃었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조국 사태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조 장관이 사모펀드 관련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을 때 역시 사모펀드 지분을 갖고 있는 인사를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발탁했다. 민정수석실은 금융감독 기구도 관할하기 때문에 이해충돌 논란이 있는데도 말이다. 올해 6월 ‘옵티머스 사건’이 불거진 뒤 사표를 낸 이아무개 전 행정관은 지난해 10월 청와대 입성 후에도 옵티머스 지분 9.8%를 차명으로 갖고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옵티머스가 다른 회사들을 인수·합병할 때 돈세탁 창구로 활용된 회사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배우자는 옵티머스 사건의 주범으로 구속 기소됐다. 조국 사태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좀처럼 청와대에서 근무할 수 없는 스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정수석실에 발탁될 정도로 그의 능력이 뛰어났던 걸까. 하지만 그런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청와대 사람들과의 개인적 인연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변호사인 이 전 행정관은 2012년 11월 당시 대선에 출마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것을 계기로 여권 인사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때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함께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민주당 인사들의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당무감사 위원을 지냈는데, 당시 위원장이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결국 김 전 수석, 이 비서관과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다.
지난 2016년 진경준 검사장이 넥슨 ‘공짜 주식’으로 120억원의 차익을 챙긴 사건이 터졌을 때, 후배 검사들은 검찰 수뇌부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검사들은 그가 금융 범죄를 수사하는 부서에 있을 때도 공짜 주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주가 조작 등을 수사하는 검사들은 본인은 물론 배우자도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야 떳떳하고 당당하게 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나섰으면 최소한 검찰보다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검찰은 진경준 검사장을 강도 높게 수사한 뒤 다른 혐의까지 추가해 기소했다. 그러고는 검찰 간부의 재산 변동을 감시하는 특별감찰단을 만들고 검사의 주식 투자를 대폭 제한하는 내용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옵티머스 사건 수사가 끝난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 검찰개혁을 완성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면 그만큼 강력한 자체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모든 개혁은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의 은폐조작을 외부에 알려 6월항쟁의 불씨를 댕긴 김정남 선생이 최근 <한겨레> 인터뷰(17일치)에서 한 말이다.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