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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브라만의 무기로 전락한 공정성 / 이재성

등록 2020-11-02 17:18수정 2020-11-03 09:18

이재성 ㅣ 문화부장

지난주 종영한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은 주인공 사혜준(박보검)이 아버지 사영남(박수영)을 전혀 닮지 않은 데서 비롯한다. 사혜준의 탁월한 외모는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설정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걔 외모에 지분이 없잖아.”

잘생긴 얼굴 덕에 스타 배우가 됐다면 부모의 지분은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까. 사혜준의 성공은 사혜준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뤄낸 것인가. 능력주의라는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이 좌우의 이념 지형을 초월하여 전일적인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시대에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비단 외모만이 아니다. 성공의 조건인 지능과 체력, 심지어 성격조차도 부모가 누구이며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모의 재력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사혜준의 친구이자 모델 출신 배우로 활동하는 원해효(변우석)는 그 상징적인 예다. 부잣집 아들인 원해효는 매니저 노릇을 자처하는 ‘헬리콥터 맘’의 지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결국 어디까지가 자신의 능력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드라마에선 부잣집 아들이 좌절하지만, 현실이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돈도 실력’이라는 정유라의 비명 같은 저주가 국민적 지탄을 받은 이유는 그 말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운 진실을 입 밖에 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이 불편한 진실에 관해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만적인 공정성 논의로 진실을 덮고 있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연성’과 ‘재능 불평등’ 현상을 수정하거나 보완하려는 시도는 저항에 부딪혀 비틀거리기 일쑤고, 학력과 시험 성적을 ‘노력’이라는 주관적 지표로 절대화하면서 사회적 격차를 유지하거나 더 벌리려는 세력이 압도적이다. ‘전교 1등’을 자처하는 의대생들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가 그런 경우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경쟁의 틀에서 최선을 다해 자격을 갖췄는데 인제 와서 규칙을 바꾸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약자의 논리였던 공정성은 이제 시험으로 자격을 획득한, 토마 피케티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한국형 브라만 계급의 특권을 보호하는 무기가 되었다. 지금 공정을 말하는 이들은 이미 브라만이거나 브라만을 지향하는 이들, 또는 그들을 옹호하는 언론이다.

공정성에 대한 거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려면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 이론을 정립한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롤스는 사혜준처럼 “노력하고 도전해서 소위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려는 의지조차도” 가정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노력의 질과 목표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면, 노력에 따르는 성과 역시 사회의 최소수혜자(최대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분배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오랜 기간 저신뢰 사회였던 탓에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시험 성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시험 성적만으로 사회적 ‘영광과 포상’의 독점을 허용하는 ‘세련된 야만’에서 벗어나야 롤스가 말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일부 언론을 포함한 한국형 브라만 계급이 펼치는 공정성 논의는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편향적이다. 세습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는 최상위 계급을 공정성의 치외법권 지대로 상정하고, 그들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리전을 감행한다. 피고인 이재용의 구속을 걱정하고, 상속세가 너무 많다고 푸념한다. 장례식장에 나타난 이재용의 자녀들에게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우월한 유전자” 운운하는 언론의 노예 근성은 시험조차 필요 없는 세습 권력에 대한 충성 맹세이자 자발적 복종 선언인 셈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태생에 따른 귀족주의(aristocracy) 시대가 끝나고, 부가 곧 권력인 금권주의(plutocracy)를 지나, 능력주의(meritocracy) 시대가 도래했다고 했지만,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이 세가지 체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기형적인 복합체가 되어가고 있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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