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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연대가 ‘가진 자들’의 무기가 될 때 / 최우성

등록 2020-11-04 18:05수정 2020-11-05 02:39

최우성 ㅣ 산업부장

주식 재산만 따져도 18조원을 손에 쥔 재벌 회장의 사망 직후 불거진 상속세 논란 와중에, 우연히 눈에 띈 사진 한장에 눈길이 콕 박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 속에 무심한 듯 자리잡은 어떤 낱말 때문이다. 정부의 공공재건축 확대 계획에 반대하는 서울 강남 한복판의 이름난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들머리엔 강고한 반대 뜻을 담은 펼침막이 내걸렸는데, 그 펼침막엔 ‘소유자연대’라는 다섯 글자가 또렷했다. 소유와 연대. 낯선 조합이되, 실은 낯익은 짝짓기다. 그래, 있어야 손 맞잡는 세상, 외려 가졌으니 힘 합치는 시대지. 때 이른 한겨울 새벽바람을 얻어맞은 듯 정신이 바짝 들었다.

자산과 소득을 설명하는 경제학 교과서의 메마른 문장은 2020년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흔히 자산이란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유무형의 가치물로, 소득이란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에 걸쳐 노동이나 자본, 토지와 같은 생산요소를 투입해 경제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받는 보상으로 풀이된다. 일정 시점의 크기(자산)와 일정 기간의 변화량(소득) 차이다. 때론 자산 불평등이 먼저냐 소득 불평등이 먼저냐의 정답 없는 논쟁의 소재로도 등장한다. 하지만 둘은 하나의 평면상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전혀 다른 차원의 현실태이다. 예컨대 고소득자는 ‘매우 높은 확률로’ 자산을 불릴 테지만, 자산 소유자는 소유에 따른 소득을 ‘절대적으로’ 보장받는다. 소득이 가능성의 영역이라면 자산은 권리의 영역인 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가더라도, 사람이 만들어놓은 사회제도(소유권)의 틀은 조금도 허물지 않는 이치와 같다. 소유는 사회를 칼로 베듯 가르는 냉혹한 절단선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재산세율 인하 기준점을 6억으로 할 것이냐 9억으로 할 것이냐와 관련한 최근의 소란스러움도 조금 다른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소득과 자산에 매기는 세금의 의미가 확연히 달라서다. 아니 분명히 달라지고 있어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오래도록 자리잡은 명제다. 대체로 자산에 매기는 세금은 예외적이거나 기껏해야 조연 정도로 여겨진 편이다. 누가 뭐래도 그간 세상은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왔고 소득도 덩달아 증가해왔으니 충분히 이해됨 직한 일이다. 하지만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고용과 일자리의 틀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오늘날의 시대엔 사정이 판이하다. 무엇보다 불평등의 골이 깊게 팬 세상에선 해마다 거두는 연간 자산세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좀 더 큰 역할을 떠안아야 한다. 토지개혁과 같은 일회성 충격요법이 아니라 정기적이고 영구적인 재분배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해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간자산의 총합은 5~6년치 국민소득과 맞먹는 수준까지 몸집을 불린 상태다. 한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을 단 한푼 쓰지 않고 모으더라도 5~6년은 걸려야 민간부문이 소유한 자산규모에 이른다는 뜻이다. 전체 자산의 60%가량이 상위 10%에 쏠린 게 2010년대 이후 주요 나라의 현실이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불평등이 가장 심했다는 1900년대 초(상위 10%가 80% 이상 소유)의 비극에 이를 날도 멀지 않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 조세제도의 무게 추는 과도하리만큼 소득 쪽에 기울어 있는 편이다. 지방세인 재산세의 연간 세수 규모는 어림잡아 10조원대. 국세 가운데 성격상 자산에 매기는 세금이라 할 상속·증여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쳐도 지난해 세수는 11조원을 갓 넘었다. 거칠게 말하면 대략 20조원이 조금 넘는 세금을 자산 소유자에게 거둬들인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1910조원과 견줘 1%를 겨우 웃도는 수치다.

‘평등할수록 빨리 발전하지만 발전할수록 불평등을 낳는다’.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내재된 잔인한 역설이다. 온갖 도전과 혼란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여태껏 꿋꿋이 버텨오며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근본원리로 자리잡은 비밀은 불평등이 임계치에 다다를 때마다 숱한 자기교정 메커니즘이 제때 작동해온 역사적 경험에 있다. 자기교정 메커니즘의 더 큰 몫이 자산에 주어져야 할 때다. 소유가 사회구성원의 운명을 구별 짓는 기준점이 되어버린 세상에선 없는 자들의 연대보다 가진 자들의 연대가 훨씬 ‘불온’한 법이다.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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