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우리 스튜디오의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말했다. 자기 스스로도 예술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영화를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의 미신 수준으로 꺼렸다”고 <뉴욕 타임스>는 썼다. 예술 대신 “쇼 비즈니스”라 불러달라고 했다. 그림도 직접 안 그렸다. 유명한 미키 마우스도 디즈니가 아니라 함께 일하던 어브 아이워크스가 그렸다(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관계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디즈니가 잘하는 일은 회사 운영이었다. 작품은 창작자의 이름 대신 디즈니라는 회사 ‘브랜드’로 나갔다. 창작자에게 돌아갈 공을 가로챘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도 창작자들은 디즈니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성공이 큰 만큼 비판도 많았다. “미국 해병대가 (제3세계의) 혁명가에게 총알을 퍼붓는 것처럼 디즈니는 (미국 문화를 전세계에) 쏟아붓는다”는 비판도 있다(1971년). 미국 문화가 세계의 표준이 된 오늘날 읽으면 “그래서 뭐” 싶다. 그래도 이 비판을 소개하는 까닭은, 세계적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한 말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때 디즈니 회사의 작품을 보았고,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본다.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판타지아>. 개봉한 날이 1940년 11월13일이다. 실험적 작품이었다. 클래식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결합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125분짜리 장편은 처음이었고, 상영을 위해 입체음향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것만으로 모자랐는지 욕심 많은 디즈니는, 영화 내용에 맞춰 향수를 뿌리는 ‘후각 효과’까지 고안했다고 한다(장면이 넘어갈 때 이전 냄새를 지울 방법이 없어 포기). 이런 일화들을 보면 디즈니는 천재였고 예술가가 맞다. 본인은 아니라 잡아뗐지만 말이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