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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역사다] 영국 자유당 당수가 벌인 청부살인 / 김태권

등록 2020-11-19 15:30수정 2020-11-20 02:38

제러미 소프 (1929~2014)
제러미 소프 (1929~2014)

옛날에는 자유당과 보수당이, 지금은 노동당과 보수당이 영국의 거대양당이다. 20세기 초 자유당의 몰락을 두고 한국의 보수논객들이 몇 해 전만 해도 “한국 민주당이 영국 자유당처럼 될 것”이라 주장할 정도였다(같은 사람들이 요즘은 “보수야당이 영국 자유당처럼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1960년대 자유당은 젊은 정치인 제러미 소프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그는 비밀이 있었다.

소프는 게이였다. 한때 노먼 스콧과 사랑에 빠졌다. 당시 영국 사회는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했다. 두 사람 신분 차이도 컸다. 소프와 스콧은 얼마 못 가 헤어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슬픈 사랑 이야기.

소프 탓이다, 상황이 엽기적인 치정극으로 흐른 것은. 소프는 훗날 자기들 관계가 세상에 알려질까 봐 걱정했고, 스콧을 죽이려고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 그런데 어설픈 킬러는 스콧이 기르던 개를 죽이느라 정작 스콧을 놓쳤다(국내 어느 매체가 이 사건을 소개하다가 지레 ‘남녀관계'로 짐작했는지 “그녀의 반려견”이라는 표현을 쓴 일이 있다).

소프가 기소된 날은 1978년 11월20일이다. 이듬해 떠들썩한 재판이 열렸다. 소프는 무죄를 받긴 했다. 한때 연정의 파트너가 되어 내각 입각까지 꿈꾸던 제3당의 대표가 바닥을 드러내고 몰락했다는 점을 배심원들이 참작해준 걸까.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눈길을 끄는 사건이지만 이야기로 만들기 조심스럽다. 사악한 정치인을 공격하기란 쉽다. 하지만 소프는 게이라서 나쁜 게 아니라 살인을 교사한 사람이라 나쁜 것이다. 영국 <비비시> 방송이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이라는 드라마로 만들었다. 휴 그랜트와 벤 휘쇼가 소프와 스콧을 맡았다. 영화 <패딩턴 2>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두 사람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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