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시즌2>의 한 장면. 티브이엔 제공
이재성 ㅣ 문화부장
지금 한국에서 드라마는 현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강한 개성의 캐릭터들이 각본 없이 펼치는 활극 앞에서 픽션은 설 자리를 잃는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정면으로 조명한 <비밀의 숲 2>는 시즌1의 화제성이 무색하게 조용히 지나갔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들의 재심을 다룬 <날아라 개천용>이 방영 중이지만 안타깝게도 반응이 뜨겁지는 않은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하는 리얼리티가 범람하는 시절에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드라마의 숙명인가.
이에 반해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의 현실 드라마는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대통령의 죽음으로 끝난 시즌1에 이어 시즌2가 진행 중인데, 사람들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푸념하면서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 드라마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서인지 벌써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검찰개혁 시즌2를 평가하자면, 강력한 악역의 등장으로 흥행성은 높아졌으나 작품성은 여전히 떨어진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갈등이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를수록 양쪽의 지지자들만 극단으로 나뉘어 침전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서로 약점을 잡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전개는 흥미진진하지만, 드라마를 끌고 가는 프로타고니스트의 확신과 집념에 대중이 몰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비론을 펼치려는 게 아니다. 윤석열 총장은 지금까지 보여준 편파성만으로 이미 검찰 수장의 자격을 잃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격을 잃은 사람에게 말을 보탤 이유가 없다. 검사들의 반발에도 관심이 없다. 흔히들 착각하는 대목인데, 그들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기 때문이다. 개혁 대상이 동의하는 개혁이란 형용모순이다. 반발은 상수다.
드라마가 막장을 향해 치닫는 지금, 질문이 향해야 하는 곳은 검찰개혁의 프로타고니스트 쪽이다. 이들은 마치 윤석열만 사라지면 검찰개혁이 완수되는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검찰의 모든 문제는 검찰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어서 생겨난 것인데, 그 많은 권한을 거의 그대로 두고 인사로 장악하려다 윤석열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난 것은 아닌지, 검찰개혁이 무슨 혁명론처럼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었는지(1단계 공수처 설립, 2단계 수사-기소권 분리?), 시즌2 주역들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날아라 개천용>은 이 드라마의 작가이자 실제 모델인 박상규 기자(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와 ‘국선 재벌’ 박준영 변호사의 존재만으로 각별하다. 이들은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만 너무도 예외적인 인물들이어서, 드라마 속 주인공은 완벽한 허구의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의 희생적 노력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죄인으로 살아야 했을 사법 피해자들은 한글도 모르는 발달장애 청소년이거나 17살짜리 배달 알바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독재정권도 아닌 김대중 정부 때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을 놓고 경쟁하는 현재의 구조로는 수사기관의 자의성을 검증하고 제어하기 어렵다. 수사와 기소, 재판의 단계마다 비싼 변호사를 살 수 있는 자만이 법의 보호를 받는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법 시스템에서 궁극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돈의 힘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칙은 소년원부터 정확하게 적용된다. 돈이 없으면 소년원에 가고 돈이 있으면 집에 간다.
검찰개혁이 밥 먹여주냐고 묻는 사람들은 군부독재 시절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고 물었던 사람들의 후예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은 엘리트들끼리의 싸움일 뿐 민중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검찰개혁이 문제가 아니라, 검찰개혁을 제대로 못 해서 문제인 것이다. 검찰개혁을 비롯한 사법개혁의 진짜 목표는 인권 침해를 권리로 착각하는 권력 기관들의 비민주적 속성을 시민의 참여로 통제하는 것이며(선출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털어서 명성을 얻고 덮어서 돈을 버는”(이연주 변호사) 합법적 부패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사건을 조작해놓고도 책임지지 않는 관료제의 익명성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나는 이제 말을 줄이고 시즌3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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