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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해고자로 산다는 것 (상) / 김계월

등록 2020-12-16 19:07수정 2022-01-11 15:31

2020 공모전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밥 시간조차 주지 않아 여행객들이 버리고 간 과자와 초콜릿을 주워 먹는 것이 배고픔을 달래는 수단이 되었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보고, 그 더운 여름날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했다.”

김계월ㅣ항공기 기내 청소 노동자

광주에서의 20년 삶을 접고, 서울로 오게 된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인천공항에 있는 아시아나 하청업체인 ‘케이오’라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2014년 6월5일, 사번은 22301.

그럴듯한 사번까지 있으니 정규직처럼 보였지만, 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였다. 서울에서 매일 첫차를 타고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인천공항으로 6년을 오고 갔다. 근무시간은 7시부터, 밥 먹는 시간 빼고는 퇴근 시간까지 어느 회사처럼 정해진 커피타임조차 없이 그저 쉴 새 없이 항공기 객실 청소를 했다. 전적으로 항공기 스케줄에 의해 움직이는 형태의 작업환경에 처음엔 정말 적응하기 어렵고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서울살이에 적응하여 생활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절박한 나는, 그 고되고 힘든 인천공항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5년 어느 날, 우리 회사에도 노동조합이 생겼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바로 노조 가입서를 썼다.

“일한 만큼 임금을 받고 우리의 권리를 찾자.” 망설임 없이 노조에 바라는 점을 빈칸에 채웠다.

첫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월급 명세서를 확인해보니 너무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당시 기본급이 88만6400원. 근무는 3일 일하고 하루를 쉬는 반복적인 형태였다. 공휴일도 없이 반복하다 보면, 한 달에 한 번 8시간을 더 일해주는 결과가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수당으로 임금을 분리해 놓은 것을 보고, 회사가 분명 임금을 빼앗아 간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를 전 직원들에게 알리고, 일한 만큼의 임금과 법적 최저임금을 받아내는 일을 노동조합에서 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임금협약과 단체협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고, 단협에 명시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해 공휴일은 당당히 쉴 수 있는 날이 되었다.

가장 큰 성과로 꼽히게 된 단협과 함께 아시아나케이오지부로서 당당하게 민주노조로 깃발을 꽂게 되었다. 노조 임원과 간부 그리고 조합원들과 함께 이루게 된 결과였다. 하지만 기쁨과 감격은 오래 누리지 못했다. 회사의 민주노조를 향한 탄압은 시간이 갈수록 악랄해졌기 때문이다. 민주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갈라치기와 회유, 거짓선전 그리고 불평등한 진급으로 비롯한 노조 탈퇴 현상까지.

갈수록 현장에서의 노동강도와 인권은 무시된 채, 회사의 돈 벌기에만 급급한 근무 형태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볼 수 없는 지경으로 다다랐다.

매년 인천공항은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고, 항공기는 편수가 날로 늘어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항공기에 올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밥 시간조차 주지 않아 여행객들이 버리고 간 과자와 초콜릿을 주워 먹는 것이 배고픔을 달래는 수단이 되었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보고, 그 더운 여름날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했다. 깜깜한 항공기 안에 들어가 손전등 몇 개로 불을 켜서 일하고, 좁은 기내를 왔다 갔다 하다 무릎이 다쳐 피멍이 들기도 했다. 다친지도 모르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다 상처를 발견하는 일은 셀 수도 없었다. 여름에는 에어컨조차 틀어주지 않아 작업복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했다. 또 누군가는 생리대를 교체할 수 없어 오버나이트를 찼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래도 노조가 있으니 조금씩 노동환경을 바꾸고, 그동안 무시당하고 옳은 소리 한 번 제대로 말해본 적 없는 현장에서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름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다.

내가 일하는 파트는 ‘스페셜’이었다. 박삼구 회장 일가나 소위 말하는 높은 양반들을 위한 일등급의 좌석, 기내 주변 전체를 청소하는 파트였다. 하지만 청소 약품이 유해한 물질인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CH2200’과 ‘MD125’라는 독한 약품을 사용하는데도 그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고, 보호장비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해온 나는 눈이 가렵고 몸이 가려워도 그냥 갱년기에 오는 체질 변화로만 생각했다. 스페셜조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크고 작은 부작용 경험을 쏟아냈다. 우리는 모든 증거를 바탕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적용하여 회사를 노동청에 고발했다. 결국 회사는 벌금과 법적 제재를 받게 되었고, 더이상 그 약품을 쓰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둘 노동환경을 바꾸는 데 노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말하며, 그동안 빼앗겼던 권리를 찾아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올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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