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31화 역대 칼럼니스트 2편
제31화 역대 칼럼니스트 2편
서경식의 글에 병역거부로
수감 중인 어떤 젊은이가 답했다 용산참사 때 황현산은 썼다
“우리가 용산참사를 잊는다면
다들 부끄러움을 모르게 될 것”
역사학자 한정숙의 글은 조곤조곤 이치를 따지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배경의 인물은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다.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총살당했다. 2014년 6월에 블로크 사망 70주년을 맞아 한정숙은 조촐한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논란을 볼 때마다 블로크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김봉규 기자가 찍었으나 지면에 실리지 않았던 사진을 이번에 공개한다.
“죽어가는 아들과 비탄에 빠진 어머니. 정말 비탄에 빠진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건 자식들의 출옥을 학수고대하다 원통하게 죽어가야 했던 내 어머니의 초상이었다.” 독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에 대해 2015년 7월에 서경식이 쓴 칼럼이다. “한국과 전세계에는 이런 비탄을 강요당한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을까.” 케테 콜비츠의 작품과 함께 선 서경식의 모습을 한승동 기자가 찍었다.
2009년 11월과 12월에 <한겨레> 지면을 통해, 감옥에 있던 은국은 서경식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경식은 2008년 3월에 ‘2018년, 내가 만나고픈 이런 조국’이라는 칼럼을 쓴 일이 있다. “이 나라는 징병제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평화국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2021년에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씁쓸하다. 한겨레 데이터베이스에는 은국의 사진이 있다. 2003년 4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피처럼 빨간 물감을 뒤집어쓴 채 퍼포먼스를 벌이는 그의 모습을 류우종 기자가 찍었다.
“1960년대 말에 내 형들이 모국 유학길을 택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 것은 아버지였다. 그러나 형들은 조국에서 감옥에 갇혔고 그들이 석방되는 날을 보지도 못한 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서경식은 2006년 3월 칼럼에 썼다. 간첩이 아닌데도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서승은 19년을, 서준식은 17년을 감옥에 있었다. “서승은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난로의 경유를 뒤집어쓰고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나오는 바람에 발각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2011년 4월 ‘한겨레가 만난 사람’ 지면에 서승의 인터뷰가 실렸다. 촬영은 이정우 기자.
와다 하루키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돕던 일본의 지식인이다. <한겨레> 창간 이후에는 여러 해 동안 칼럼도 썼다. 2013년에 이정아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2016년 3월에 서경식과 와다 하루키는 <한겨레> 지면을 통해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가해자인 일본인과 피해자인 재일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 때문에, 다른 한편 “와다의 현실주의와 서경식의 이상주의” 때문에 두 사람의 입장이 갈린 것 같다고 당시 일본 특파원이던 길윤형은 전한다. “어쩌면 이 논쟁은 1990년대 이후 일본 리버럴 세력 안에서 발생한 가장 뼈아픈 ‘균열’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글은 왜 쓰고 왜 읽나. “(시인이 쓰는 글은) 이 모욕 속에서, 이 비루함 속에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고 생각하려던 사람들을 다시 고쳐 생각하게 한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2010년 3월에 썼다. “(글 쓰는 사람의) 용기는 당신이 한순간이라도 꿈꾸었던 세계가 허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로 결심한 사람의 용기다.” 2013년에 김정효 기자가 찍었는데 지면에는 실리지 않았던 사진을 공개한다. 웃음을 터뜨리는 생전의 모습을 보니 격조있던 그의 문장이 새삼 그립다.
“진영논리에 갇힌 칼럼”이나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만 내용이 뻔한 칼럼”이 <한겨레>에 종종 실려 거부감이 들지만, “김선주 칼럼은 결론을 성급하게 제시하지 않고 자신이 고민하는 결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글 전체를 다 읽게 되는” 좋은 칼럼이라고 했다. 2014년에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창간 때부터 <한겨레>와 함께한 김선주의 글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촬영은 손홍주 기자.
창간하고 열번째 돌을 맞은 1998년 5월에도 <한겨레>는 역대 칼럼니스트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조영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지난 90년 43살의 한창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자신이 <전태일 평전>의 지은이라는 사실을 끝내 숨기며 ‘정말 조용히’ 인권과 노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사진은 돌에 새긴 조영래의 얼굴이다. 정병례 작가가 전각으로 만들어 2000년 9월에 전시했다.
“소문대로 그는 원칙에 충실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2012년 11월에 하종강과 인터뷰한 김두식은 썼다. “하종강은 자기 삶을 ‘대단하고 특별할 게 없는데, 그저 남들보다 오래 했을 뿐’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자기 자랑을 피하는 대신, 상담과 교육에서 느끼는 보람을 한참 이야기했습니다.” 하종강은 <한겨레21>과 <한겨레> 칼럼을 통해, 잔잔하지만 울림이 있는 글맵시로 여러 해 동안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촬영은 강재훈 기자.
김훈은 소설가로 유명하다. 그전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2000년 강창광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한겨레>에는 기사도 쓰고 칼럼도 썼다. 마음을 흔드는 문장으로 삶의 현장을 그려냈다. 제목도 ‘거리의 칼럼’이다. 2002년 3월에는 집회장을 다녀와 “‘밥’에 대한 단상”을 썼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지난해에 <한겨레>는 ‘2020 노동자의 밥상’을 연재했다. 김훈의 이 칼럼을 언급하며 “18년이 지난 지금, 밥은 여전히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일지 몰라도, 밥상만큼은 철저하게 개별적이더라”고 덧붙였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전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축제지만 다른 한편 국가주의가 제힘을 뽐내는 불편한 자리기도 하다. 2016년 7월 브라질의 리우 올림픽에 맞추어 조효제는 ‘올림픽, 스포츠, 인권’이라는 칼럼을 썼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스포츠 인권은 새로운 의제로 큰 주목을 받는다.” 그해 9월,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는 “조효제의 칼럼으로부터 올림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관점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2002년에 임주환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2016년 11월 <한겨레>에 최현숙의 인터뷰가 실렸다.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선생님은 좌파에,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에, 이혼녀에, 가난한 독거여성이세요. … 근데 놀라운 건 이 모든 걸 선생님이 스스로 선택하셨단 점이에요. 왜죠?” 이진순의 말에 최현숙은 껄껄 웃었다. “글쎄, 호기심 때문인가? 하여간 그게 ‘맛’있어요. 살맛을 거기서 느끼는 거죠.” 2016년에 강재훈 기자가 찍어둔 사진을 이번에 공개한다. 사진 속 최현숙은 당당하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그의 책과 칼럼만큼이나.
무엇을 쓸 것인가. 주제만 놓고 보면 “뻔한 이야기”라고, 최근의 칼럼에서 이상헌은 썼다.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일하고,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벌게 하고, 그렇게 살면서 차별 없이 존중받는 사회.” 그런데 유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일하는 자신은 “이 세 가지가 보장된 ‘철밥통’ 삶을 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내 글쓰기가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이유다. 그래서 당신들이 글을 많이 써줬으면 한다. 그런 뻔하지 않은 글을 당신이 아니면 누가 쓰겠는가.” 2015년 토크콘서트에서 정용일 기자가 찍어둔 사진을 이번에 공개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9350.html
[알림] 한겨레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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