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우정을 주제로 다룬 영화 <청춘꽃매>의 한 장면.
정병호ㅣ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지난여름 퇴직했다. 코로나로 적막한 교정에서 며칠 동안 조용히 연구실 짐을 꾸렸다. 수십년 쌓인 책들이 문제였다. 도와주던 학생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이 책들 다 보신 건가요?” 보고 싶었던 책, 앞으로도 볼 것 같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욕망의 무덤이지!” 부끄러운 마음을 그럴듯한 말로 둘러댔다. 그 말을 증명하듯 같은 책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을 또 사놓은 것이다.
미국에서 지금도 교수를 하고 있는 친구가 건망증을 염려하는 나를 위로했다. “누가 썼는지 참 잘 썼다!”고 감탄하며 한참 읽다 보니 예전에 자기가 쓴 글이란다. 연령차별이라고 정년퇴임제도를 폐지한 미국 대학에는 자기보다 심한 70~80대 교수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몇십년 동안 함께 일한 동료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곤란했다는 친구, 아내 이름을 착각해서 낭패를 봤다는 친구, 갑자기 자기 이름이 안 떠올라 당황했다는 선배가 생각났다. 너도나도 병 자랑 하듯 건망증을 하소연한다. 우리 나이쯤 되면 모두가 겪는 일이다. 그래도 위로되기보다는 노년의 악몽, 치매가 걱정된다.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를 쓴 바버라 스트로치는 중년과 노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 사실들을 소개하고 있다.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노년기만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청년기, 중년기도 함께 늘어난다. 같은 나이라도 신체조건이나 사회관계, 생활습관에 따라 수명의 개인차가 크게 벌어진다. 그래서 살아온 햇수인 나이보다 살아갈 햇수를 확률적으로 추정해서 남자의 중년기는 58~73세, 여자는 63~78세가 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건망증은 치매 같은 질병이 아니다. 중년기의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다. 이름과 숫자를 잘 잊어버리고 젊었을 때처럼 암기력과 계산 능력이 빠르지 않아도, 중년의 뇌는 전반적으로 놀랍도록 유능하고 재주가 많다고 한다. 복잡한 정보를 종합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월등하다. 삶의 경험치가 많은 만큼 어휘력과 지각력도 뛰어나다. 물론 중년의 뇌가 더 이상 풋풋하지는 않다. 신경전달물질이 줄어들고 일정 부분 뇌의 손실도 있다. 그래도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이 계속 촘촘해져서 문제 해결을 위해 더 정교하게 작동한다. ‘중년의 지혜’란 약간 느리지만 훨씬 훌륭한 그런 뇌기능을 뜻한다. ‘걸러서 기억하는 것’도 일종의 지혜라고 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정말 위로가 된다.
그렇게 뛰어난 중년의 뇌도 안 쓰면 시드는 근육처럼 점점 쇠퇴한다니 걱정이다. 뇌과학 연구들은 기억력에 좋다는 건강식품과 약들은 그리 효과가 없다고 한다. 뇌도 신체의 일부분이니까 늘 걷고, 뛰고, 움직이라고 한다. 의자에 앉아서 몇시간씩 꼼짝 않고 지내는 버릇을 들인 둔해진 몸이 문제다. 탄력 있는 젊은 몸이 아니니 힘이 들어도 오히려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 더 건강하고 지혜로운 뇌를 만들려면 티브이를 끄고 책을 읽으라고 한다. 읽기보다 쓰기가 더 좋다. 새로운 악기 연주나 외국어 공부같이 익숙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면 나이 들면서도 더 훌륭한 뇌를 갖게 된단다. 진짜 자율학습을 다시 시작해야 할 나이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주문이 더해졌다. 전통적 해답이었던 ‘음식과 운동’보다 ‘관계와 의미 있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지중해식 식사가 좋은 것은 올리브유와 토마토보다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의 문화적 관계 때문이다. 혼자 달리는 것보다는 함께 걷는 것이 좋고, 놀며 소일하는 것보다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봉사하는 것이 낫다. 노년의 건강과 행복에 대한 전반적 연구결과지만, 정서와 인지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노년의 뇌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만큼 인간은 무리 지어 살도록 진화된 사회적 동물이다.
정년을 맞은 베이비붐 세대의 위기는 그동안 당연하게 누렸던 ‘관계’와 ‘일’을 잃게 된 것이다. 개발시대를 통해서 마을과 이웃, 심지어 가족 ‘관계’까지 희박해진 첫 세대이기도 하다. 공식적 사회조직에 매달려 살아온 사람들이 특히 위험하다. 이제부터 중요한 ‘관계’는 바로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다. 직업과 직위를 떠나서 다른 사람을 돕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일을 새로 찾고 만들어야 한다. 가치관과 취향을 존중하며 함께 일하고 놀 수 있는 이웃이 있으면 최선이다. 정서적 유대와 공감능력이 중요하다. 권위적 꼰대는 이래저래 살기 어려운 새로운 노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