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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미나리’의 가족주의 그리고 ‘국뽕’ / 이재성

등록 2021-03-22 14:08수정 2021-03-23 02:43

영화 <미나리>의 리 아이작 정 감독(맨 왼쪽)과 배우들. 판씨네마 제공
영화 <미나리>의 리 아이작 정 감독(맨 왼쪽)과 배우들. 판씨네마 제공

이재성 ㅣ 문화부장

세계 영화제의 트로피 수를 늘려가고 있는 <미나리>에 불손한 소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족이 서사의 중심에 서는 영화의 계보에서 <미나리>는 현저한 퇴행을 보인 영화로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 영화들이 가족을 해체하고, 비틀고,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모색한 지 오래인데, 혈연에 따른 가족주의에 호소하는 영화가 세계(정확히는 미국)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나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원성이 벌써 들리는 것 같다.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말하면, 나도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객관적인 시선의 카메라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과묵한 등장인물들은 예술영화에 익숙한 관객을 편안하게 맞는다. 감독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데이비드(앨런 김)의 짓궂은 장난, 순자(윤여정)의 직설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대사들, 정성 들여 키운 농작물과 미나리의 극적인 대조…, 장점만으로 지면을 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영화의 예술영화적 에토스 안에 담긴 가족주의라는 정념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영화 전반에 대한 평가가 아님은 물론이다.

이 영화가 미국을 사로잡은 배경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마음으로 <미나리>를 분석해야 한다. 아시안 아메리칸의 비중이 커지면서 그들이 미국에 정착한 사연에 대한 호기심이 늘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영화가 가족과 종교(기독교)라는 미국인들의 보편적인 정신의 뿌리에 가닿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 가족이 망설인 끝에 나가게 된 교회의 목사가 이들을 일으켜 세워 “참 아름다운 가족”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은 다분히 미국적이다. 인적이 드문 광활한 미국의 시골에서 가족과 종교는 세상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이컵(스티븐 연)은 십자가를 메고 가는 폴(윌 패튼)을 거의 대놓고 경멸하는데, 이것은 나중에 가족에게 내릴 ‘천벌’의 복선이 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고난의 클라이맥스에 이어 등장한다.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자는 4명의 가족과 그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 클로즈업.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관객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문구가 새겨진다. ‘그래도 가족.’

리 아이작 정 감독이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으로 밝힌 바 있는 ‘그 어떤 언어보다 심오한 (가족이라는) 진심의 언어’는 안전하지만 보수적이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소중하고, 그래서 가족은 안전한 영화적 소재이지만, 가족주의라는 결론은 보수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지만, 어떤 영화가 ‘그래도 돈’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영화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미셸 푸코가 말했듯이, 현대 예술은 관습에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며, 부당한 합의에 반대하는 능력이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지닌 반문화적 힘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역할이 답을 찾는 것이라면, 예술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족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요청한다. 1인 가정이 급격히 늘고, 동성결혼을 비롯해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져서만은 아니다.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내린 명령은 탐욕을 멈추고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라는 것인데, 그 명령의 이행을 가로막는 것이 인간의 이기심이고, 그 이기심을 재생산하는 체제의 기초에 가족(이기)주의가 있다. 부계혈족 중심의 가족주의는 민족(nation)이라는 유사가족주의 개념으로 몸집을 키워 전쟁과 살육의 연료가 되기도 했다. 작금의 부동산 투기나 교육 문제 같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근저에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근본주의적인 주장일까.

한국인이 <미나리>를 보는 감정은 양가적이다. 이 영화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한 골든글로브의 국수주의적 처사에 분개하면서도, 아카데미 수상을 기대하며 한국영화인 것처럼 응원한다. 가족주의 확장판으로서 국가주의가 작동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세상을 이타주의로 가득 채울 수는 없어도, 덜 찬미하고 더 경계하는 게 우리가 나아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우린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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