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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봉현의 저널리즘책무실] “아, 맞아!” 하는 뉴스

등록 2021-03-23 18:06수정 2021-10-15 11:20

몽당연필 모양으로 가로수 가지치기를 해 놓은 것을 보고 불편해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렇게 잘라놓으면 절단면을 통해 세균이 침투해 나무가 썩고 쓰러질 수도 있다. <한겨레>의 최근 기사는 나무 학대 수준의 ‘강전정’이 난무하는 이유를 짚었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제공
몽당연필 모양으로 가로수 가지치기를 해 놓은 것을 보고 불편해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렇게 잘라놓으면 절단면을 통해 세균이 침투해 나무가 썩고 쓰러질 수도 있다. <한겨레>의 최근 기사는 나무 학대 수준의 ‘강전정’이 난무하는 이유를 짚었다.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제공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30년 만이라는 영하 20도의 맹추위에 사방이 꽁꽁 얼어붙은 1월 중순. 아침 식탁에서 아내는 “요즘 집집이 세탁기 못 돌려 난리인가봐, 그래서 동네 코인 빨래방이 미어터진대요” 했다. “거참 큰일이네” 하고 말았는데, 이튿날 아침 한 신문의 제목에 눈길이 꽂혔다. “위층 세탁기 돌리자, 아래층 물난리…한파발 빨래 대란”. 그제야 ‘어제라도 담당 부서에 귀띔해줄 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다.

지금은 현업을 떠난 한 선배 기자는 후배들과의 저녁 자리가 파할 무렵이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기자는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취재인 거야!” 듣는 이에게 부담을 팍팍 주는 말이었지만, 잘 새겨들으면 약이 되겠거니 했다. 기자가 생활인의 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지금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제때 전하는 것은 책이나 논문이 따라오기 힘든 뉴스의 매력일 것이다.

얼마간 관심을 갖고 살펴보니, <한겨레>에서도 ‘생활감각’이 돋보이는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이나 카페 주인들이 중고거래 사이트 ‘당근마켓’에 집기나 식재료를 올려서 파는 사연을 다룬 데스크 칼럼이 그중 하나다(“누구에게나 ‘화수분’은 없다”, 2월8일치). 기자는 어느 날부터 ‘토마토케첩 1회용 160개 3000원에 팝니다’, ‘(업소용) 조미료 1㎏씩 팝니다’ 같은 매물등록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가게 구석에 놓인 손때 묻은 물건을 찾아 몇백원, 몇천원이라도 건지려는” 자영업자의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읽었다. 당근마켓의 ‘폐업 매물’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지금 코로나 방역의 뒷감당을 온전히 감내하는 이들이 누구이며, 재정적자가 좀 늘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왜 정부가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하는지의 논의로 확장되어 갔다.

나무 학대 수준의 무자비한 가지치기 현장을 고발한 기사들도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뉴스였다(“‘벌목 수준’ 가지 없는 가로수, 왜 이렇게 많나 했더니···”, 3월1일치, “[뉴스 AS] ‘무자비한 가지치기’ 왜 반복되나 했더니···”, 3월3일치, ““아파트 나무도 공적관리” 잇단 목소리”, 3월23일치). 그러지 않아도 봄이 오는 거리를 걷다, “가로수를 왜 이렇게 몽당연필처럼 만들어 놓았을까” 하고 여러번 궁금하고 화도 나던 차였다. 기사에 달린 공감 댓글과 수백건에 이르는 페이스북 공유는 비슷한 생각을 한 독자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외국과 달리 가로수 가지치기 규정이 미비하고, 구청 등에서 뭉떵뭉떵 베어내는 ‘강전정’에 더 많은 노임을 쳐주는 앞뒤 안 맞는 행정 때문임을 지적한 이 기사 덕분에 도시의 거리가 덜 황량해지길 기대한다.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전북대)는 15일치 <한겨레> 칼럼(“‘제보 저널리즘’을 위하여)에서 언론이 “민생의 현장은 멀리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 목숨을 걸듯이 집중”하는 관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가 출입처라는 ‘길목’을 지키며 정부와 정치권에서 나오는 뉴스를 양산하는 ‘발표 저널리즘’ 체질을 고수하는 한 민생과 거리는 점점 멀어지리란 걱정이었다. 강 교수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제보를 환영하고 유도하면서 취재의 출발점으로 삼으라고 기자에게 권했다. 끼리끼리만 어울리지 말고 이질적인 사람들과 폭넓게 교류할 때 비로소 민생이 보이고, 의제로 다루게 된다고도 했다.

기자의 생활감각은 이웃의 삶에 섞여들어 관심을 기울일 때 살아난다. <한겨레>는 전통적으로 정치와 권력의 이야기를 잘 다루어 왔다. 하지만 꼭 여의도나 청와대, 검찰에만 정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동산, 교육, 보육, 환경 등 일상의 공간에서 정책과 정치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도 값진 일이다.

쏠림현상을 일으키지 않도록 유의해야겠지만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처럼 매매·전세가 동향에 민감한 부동산 기사, 주말에 들른 할인점이 미어터져 “웬 사람이 이렇게 많지” 했는데 월요일 아침에 뜬 ‘코로나 반발 소비’ 기사. 특종상 주는 기사는 아니겠지만 보는 순간 “아, 맞아” 하는 싱싱한 뉴스가 많아지면 좋겠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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