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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5·18 모욕 만평과 천주교 대구대교구 / 이순혁

등록 2021-03-29 14:11수정 2021-03-30 02:44

이순혁 ㅣ 전국부장

“범어대성당에는 장례미사 소식을 들은 신자와 일반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이 대주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고, 대성당 안은 신자와 사제단 등 600여명으로 가득 찼다. 좌석이 모자라 성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신자들은 성당 입구에 모여 눈을 감고 애도를 표했다.”(<매일신문> 3월18일치)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성대했다. 텔레비전(가톨릭평화방송)과 라디오(대구가톨릭평화방송)로 생방송된 장례미사에서는 “대구경북을 지탱해온 기둥이었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이끌어주시던…”(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우리 지역의 큰 어른께서 오늘 하늘나라로 가셨다”(권영진 대구시장) 등 고위직들의 애도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들이 애도한 이는 지난 14일 선종한 이문희 대주교다. “가톨릭 내에서 박홍 전 서강대 총장과 함께 대표적인 강경 보수 인사로, 노무현 정부가 사학법 개정을 시도할 때 ‘학교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처로 맞서기도 했”(<한겨레> 3월15일치)던 이 대주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 대주교가 교구장(1986~2007년)과 보좌주교(1972~1986년)로 35년가량 이끌어온 대구대교구는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기로 유명하다.

1973년 말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이 벌어지자, 김수환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은 “국민의 기본 인권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인권을 크게 침해하는 역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이 정정당당히 국정에 참여할 수 있게끔 정치풍토가 개선돼야 하며, 이는 현 체제를 지양하고 헌법을 개정, 삼권분립과 평화적 정권교체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1973년 12월16일 ‘교회와 인권 연합예배’ 강론, <가톨릭시보> 896호)

김 추기경이 서슬 퍼렇던 유신체제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강조하고 보름쯤 뒤 서정길 대구대교구장은 “현 시국은 온 겨레가 하나로 뭉쳐도 난국을 헤쳐나가기가 어려운 때다. 최근 일부에서 주장하는 반체제·개헌 논의 등은 결국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유신체제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에 대한 공과를 논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1974년 1월1일 대구대교구 신년 교례회, <가톨릭시보> 898호)

권력과의 유착은 전두환 정권 때도 이어졌다. 신군부가 국회를 해산시키고 악법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에 대구대교구 소속 전달출 신부와 이종흥 신부가 참여한 게 대표적이다. 그 결과 도마다 한개 신문사만 두는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대구대교구가 소유하고 전달출 신부가 사장으로 있던 <매일신문>은 <영남일보>를 흡수 통합해 대구의 유일한 일간지로 올라설 수 있었다. “대구 보수화의 뿌리가 매일신문이고, 천주교 대구대교구다”(임성무 전교조 대구지부장)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군사독재 시절 대구대교구는 끊임없이 몸집을 불려 사업영역을 크게 확장했고, 현재 △대구가톨릭대병원과 파티마병원 등 병·의원 9곳 △사회복지기관 100여곳 △대구가톨릭대학교와 중·고교 18곳 △대구가톨릭평화방송과 가톨릭신문사 등을 산하에 두고 있다. 멀쩡한 도립공원 산림을 베어내고 들어서 특혜·비리 의혹이 제기됐던 팔공산골프장도 대구대교구 소유로 알려져 있다.

가진 게 많으니, 비리도 많다. 부랑아 수용시설인 희망원에서의 인권유린과 횡령 등 혐의로 신부 2명이, 파티마병원 의약품 납품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수녀가 구속됐다. 팔공산골프장 불법 회원권 발행과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조환길 대구대교구장 상납 의혹 등이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렸다. 모두 최근 3~4년 새 일어난 일이다.

그 동네에서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대구대교구 이야기가 새삼 생각난 것은, 광주 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시민 폭행 장면에 비유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매일신문> 만평 때문이다. <매일신문>은 뒤늦게나마 29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배후랄 수 있는 대구대교구는 조용하기만 하다. 회개와 참회를 강조하고 낮은 곳으로 임하라고 가르치는 천주교가 왜 속세의 권력기관인 일간지를 소유하고 있는지부터 이해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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