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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역사다] “하늘은 편견 없는 유일한 공간” / 김태권

등록 2021-04-29 18:01수정 2021-04-30 02:35

비행사 베시 콜먼(1892~1926)
비행사 베시 콜먼(1892~1926)
비행사 베시 콜먼(1892~1926)

베시 콜먼은 프랑스에 가서 비행기 모는 법을 배웠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가 어째서 멀리 프랑스까지 갔을까? 차별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흑인이었고 아버지 쪽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피가 섞였다. 가난한 목화밭 소작농 집안의 딸이었다. 그런데 그때 미국에는 흑인에게도 여성에게도 비행기 모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콜먼은 어려서부터 일하며 모은 돈으로 대학에 갔지만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낼 수 없어 중퇴했고, 시카고에 가 형제들의 집에 살면서 손톱관리사와 식당 지배인 일을 했다. 그러다가 프랑스에서는 여성도 비행기를 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흑인 독지가를 구하고 프랑스어를 배워 유학에 나선 것이다.

콜먼은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조종사가 되었다. 미국에 돌아와서는 공중제비를 돌고 하늘에 8자를 그리며 위험한 곡예비행을 했다. 당시 미국 사회가 흑인 여성을 파일럿으로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콜먼은 열심히 공연했고 미국과 유럽에서 유명해졌다.

콜먼이 공연을 거부할 때도 있었다. 고향인 텍사스에 왔을 때, 공연장의 입구가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고, 콜먼은 에어쇼를 거부했다. 여러 번 회의를 거친 끝에 입구는 하나가 되었고 그제서야 콜먼은 비행기를 몰았다. “하늘은 편견 없는 유일한 공간이다.” 콜먼이 남긴 글이다.

열심히 돈을 모은 이유는 비행기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자기 학교를 세우고 싶어서였다. 여성도 유색인종도 차별 없이 비행기 모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콜먼은 꿈꾸었다. 여러 해 노력한 끝에 비행기를 한 대 더 장만했다. 그러나 1926년 4월30일, 다른 사람이 모는 자신의 새 비행기를 탔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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