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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리 동네 K방역 이야기

등록 2021-05-26 18:01수정 2021-05-27 02:40

[편집국에서] 정세라ㅣ사회정책부장

기나긴 야근에 이어진 비번 날 아침, 초등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이제 막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아이가 벌써 점심 급식을 먹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비몽사몽간에 ‘친절 에너지’를 단전에 끌어모으고 ‘학교에서 별일 없었냐’ 입을 떼려는 찰나에 아이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엄마, 엄마, 동네 ○○어린이집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대. 그 어린이집에 동생이 다니는 애들이 수업 중에 집에 갔어.” 잠이 확 깼다. 아이가 말하는 어린이집은 규모가 꽤 크고 초등학교 담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초등 아이들의 형제자매가 많이 다니는 건 당연했다. “어린이집 누가? 학교에선 검사는 안 한대?” 성마른 엄마가 다그쳤는데 아이는 별로 아는 게 없다.

하지만 답답해하는 시간은 별로 길지 않았다. 아이 학원에서 곧바로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어린이집 교사 무증상 확진이라 합니다~ 저희 원생들 동생들 몇 명이 다니고 있다 하니 오늘 하루 휴원합니다.” 당일엔 문을 닫지 않았던 일부 학원들도 아이를 통해서 우리 학원엔 해당 어린이집 다니는 동생을 둔 원생들이 없다 합니다, 하는 전언이 이어졌다. 공적 기관인 학교는 개인정보 노출 등을 우려해 감염병관리상 의무가 생겨나는 상황이 아니면 별도의 공지를 하지 않았지만, 동네 학원들의 비공식 네트워크가 실시간 소식통으로 작동한 셈이다.

동네 어린이집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떠들썩했던 뒷날이 마침 공휴일이라 학교·학원들은 ‘다행히’ 휴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학원들은 휴일에도 실시간 소식들을 끊임없이 전해왔다. 학원에 다니던 어린이집 관련 가족들에게 확인했는데, 그 당일에 검사를 받으러 가서 모두 음성을 받았다는 얘기, 휴원한 날 학원 교사들도 모두 검사소로 달려갔는데 다행히 뒷날 음성 확인을 받았다는 얘기, 그래도 영 찜찜하면 학원 수업 일수는 자동 연장해줄 테니 학원을 쉬어도 된다는 얘기까지…. 민간의 대처는 기동력이 있는데다 이른바 ‘디테일’을 갖추고 동네 사람들의 가려운 곳들을 긁어줬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동네에 코로나19 전파가 가까이 왔다는 판단을 한 것인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곳곳은 순식간에 빨간 테이프가 둘러쳐지며, 당분간 이용이 차단됐다. 마실 나온 분들이 앉아 노는 정자들도 마찬가지가 됐다. 동네 곳곳이 수사드라마 사건 현장처럼 출입금지 테이프를 두르고 오가는 이들의 경각심을 돋우는 상황이 된 것이다.

케이(K)방역이란 이런 것이다. 정부의 노력도 있지만, 많은 부분 민간의 자발성과 기민성, 이인삼각 달리기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과도 같은 ‘디테일’한 대응들이 서로 이어져 지역사회의 감염 확산을 차단하고 일상을 이어갈 신뢰를 확보해준다.

정부는 27일 이후 60~74살 고령층에 대한 접종을 개시하는 등 35일간 900만명에게 하루 평균 25만명씩 주사를 맞혀야 한다. 이런 목표치를 달성하려고 1차 접종자는 가족 간 모임 인원제한에서 제외한다든지 경로당·문화센터 출입을 좀 더 자유롭게 한다든지 하는 접종 유인책을 내놨다. 7월엔 1차 접종자가 야외 공원 등에서 거리두기와 상관없이 마스크를 벗는 걸 허용하겠다는 지침도 내놨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장의 디테일한 작동’일 것이다. 정책 설계자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든 현장 반응과 불안에 기민하고 촘촘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정책이 신뢰를 잃는지 사람들은 접종 이상반응 관련 논란에서 충분히 목격했다. 경증·중증 이상반응 문의가 급증할 때 응급의료체계가 어떻게 작동할지, 면역이 완전치 않은 1차 접종자가 거리두기가 쉽지 않은 대도시 야외 공원에서 마스크를 벗게 됐을 때 다수 비접종 시민과 어떻게 갈등할지, 의도 이상의 마스크 방역수칙 해이로 이어지진 않을지…. 정부가 챙겨야 할 ‘디테일’은 적지 않다.

우리 동네 어린이집은 여전히 2주간의 일시폐쇄를 겪고 있지만, 동네 학원과 놀이터는 약간의 시간을 보내고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접종도 마스크도 100% 감염 차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위험 속에서 일상을 단계적으로 회복할 수 있게 정책 신뢰를 이어가는 일이다.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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