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살기 힘든 나라였다. 정치가끼리 편을 갈라 싸울 때 사회의 모든 영역이 말려들곤 했다. 잘나가던 젊은 음악가 쇼스타코비치는 몰락한 혁명가 투하쳅스키와 친했다는 이유로 얼마 못 가 숙청을 당할 형편이었다. 언제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그는 <교향곡 5번>을 작곡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쇼스타코비치는 인생역전, 소련에서 영웅 대접을 받게 되었다.
1937년에 이 곡을 처음 연주해 얼마나 훌륭한 음악인지 세상에 알린 지휘자가 므라빈스키다. 태어난 날이 1903년 6월4일.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50년 동안 레닌그라드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20세기 냉전의 시대에 “우리 쪽 문화예술도 서방 쪽에 뒤지지 않는다”며 소련과 동구권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음악인이었다.
한때 므라빈스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였다. 글린카와 차이콥스키 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은 므라빈스키의 선이 굵은 연주와 잘 어울린다(나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과 <9번>도 므라빈스키의 연주를 좋아하는데, 거침없는 그의 해석을 남들도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쇼스타코비치를 가장 잘 연주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리코딩하던 독일의 지휘자 카라얀이 “어째서 쇼스타코비치는 잘 녹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므라빈스키가 이미 훌륭한 음반을 냈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사회에는 세상을 떠날 무렵에나 그의 음악이 알려졌다. 냉전의 끝자락에 묻어가던 남한의 군사정권이 소련 사람의 음악이라며 한동안 듣지 못하게 하다가 88올림픽을 앞두고서야 금지를 풀었다. 이때도 므라빈스키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과 함께 소개되었다.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