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김경락 ㅣ 산업팀장
“저희 회사 구경 한번 오시죠.”
언론계에 몸을 담고 있다 두해 전 한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긴 40대 후반의 한 인사는 입사 뒤 보니 회사 전체에서 나이로는 서열 3위 안에 든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랜 기간 산업 담당 기자로 다수의 기업을 누빈 그의 눈에도 생경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일반 대기업과 달리 젊은이가 넘쳐나고 구성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환경이 혁신적 사고와 상품, 서비스를 낳는다고 믿는 듯했다. 딱히 부인하기 어려웠다.
이른바 ‘혁신 기업’들의 정기보고서에도 남다른 면모가 두루 담겨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직책명과 인적 구성이다. 네이버의 미등기임원란(3월 말 기준)에는 ‘상무’ ‘전무’ ‘부사장’ 대신 ‘주요 리더’란 말이 등장한다. 직책명부터 수직적 위계에서 벗어난 회사라는 걸 암시하는 듯하다. 게다가 전체 리더 120명 중 1960년대생은 고작 6명뿐. 대부분이 70년대생(100명)이다. 80년대생도 14명 있다. 50대 중후반이 경영진 주축인 일반 대기업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 전체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도 5년 내외로 짧다.
카카오는 한발 더 나아간다. 이 회사의 정기보고서엔 상법상 필요한 이사회 참석 이사 7명(사외이사 포함)만 나열돼 있다. 임원 직제 자체가 없다는 선언이다. 카카오의 한 인사는 “카카오공동체는 여느 기업들과는 다른 조직 질서를 갖고 있다. 다른 기업 보듯이 카카오를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카카오는 서로 간 호칭도 직책은 뺀 영어 별칭을 쓴다.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김범수씨는 ‘브라이언’이라고 쓰고 불린다. 여느 기업에선 흔한 임원 개인방도 카카오엔 없다. 브라이언도 자기 돈 내고 개인방 쓴단다. 영국과 미국에 독특한 공동체를 꾸렸던 19세기 사상가 로버트 오언의 실패한 꿈을 카카오는 되살려보려는 걸까란 인상을 받았다.
최근 잇단 어두운 소식들을 접하며 뒤통수를 한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네이버에선 수평적 문화는커녕
주요 의사 결정을 독식하는 창업자와 그를 중심으로 한 실세 그룹이 존재하며, 급기야 실세 지원을 받는 임원의 괴롭힘에 한 직원이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카카오는 기업이 아닌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하나 근로기준법 무더기 위반으로 당국 제재를 받았다. 직원들은 구조적 문제라며 인사 관리의 불투명성을 고발한다. 취재 기자들의 취재록엔 ‘위선’이란 낱말이 수시로 등장한다.
그럴듯한 외피와 달리 내부는 곪아 있는 것일까. 근사하게 보였던 것들도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카카오는 정말 임원이 없을까. 임원 명함을 들고 다니는 카카오 ‘직원’은 도대체 회사 내 지위는 무엇인가. 임원이면서 서류(정기보고서)상으로만 직원은 아닐까. ‘카카오는 수평적’이란 외피 덕택에 여느 기업 임원과 달리 보유 주식 현황과 매매 기록 공시 의무를 면탈하는 것은 아닐까. 상시적인 신규 사업 진출과 인수합병, 분사로 주가가 출렁이는 과정에서 ‘서류상 직원’들의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는 없었을까. ‘임원 주식보유·변동 공시’에서 실마리가 잡혀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 불공정거래’ 혐의로
당국 조사를 받는 현대차 임원들로선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한국의 혁신 기업들은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미국 기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재벌 대기업의 전횡에 신물이 난 우리나라 국민도 이들 기업이 한국 기업 풍토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뒤통수 때리기는 잠시 멈추고 구글의 비공식 모토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나쁜 짓 없이도 돈 벌 수 있다는 의미)를 한국 기업들이 되돌아보면 어떨까. 구글은 개인정보 유출 등 여러 추문에 시달리며 모토를 정작 구현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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