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지난 3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던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다른 개혁 입법들 처리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검찰 개혁 법안 처리에서 원내 172석의 힘을 확인한 민주당이 10일부터는 ‘거대 야당’으로 처지가 바뀌는 만큼, 새 정부에 맞서 개혁 입법에 더욱 선명하게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8일 송두환 위원장 명의로 낸 성명에서 “국회는 여야가 합의한 평등법(차별금지법) 공청회를 조속히 개최하고 법안 심사 진행을 위한 입법 절차를 지체 없이 시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6~27일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벌인 평등에 관한 인식조사 결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한다’고 답한 비율이 67.2%로 나타났다면서 “평등법 제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는 이미 충분히 확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별과 장애,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 국회에서 발의된 뒤 보수 교계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인 태도 탓에 입법이 미뤄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현재 여야 간사가 차별금지법 관련 공청회 개최 일정을 협의 중이다. 법사위는 지난달 26일 전체회의에서 차별금지법 공청회 계획서를 의결한 뒤 아직까지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5월 중순까지는 차별금지법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국민의힘이 비협조적이지만 무턱대고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가 구체적인 공청회 개최 시기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차별금지법에 부정적인 국민의힘이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 민주당과 정의당만으로 공청회를 열어 입법 논의를 진전시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민주당의 태도가 미심쩍다는 지적이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이은주 정의당 신임 원내대표와의 상견례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한 공청회 일정부터 서둘러 잡자’는 그의 말에 즉답을 피했다.
공청회 일정 협의를 내세워 입법을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장혜영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한겨레>에 “10일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이 있는데 그 뒤 언제까지 공청회를 하겠다는 건지 여전히 민주당의 답변이 유보적”이라며 “법안심사를 위한 소위원회에서 논의를 하다가 공청회를 열 수 있는데, (공청회 일정 협의에만) 집착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라고 말했다.
아울러 방송법 개정안 등 언론개혁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후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를 막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거듭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12일에야 이사회 대신 25명 규모의 각 분야 전문가가 사장을 선출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과 한국기자협회 등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을 위해 쏟아부은 에너지의 10분의 1이라도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기득권 포기를 위해 사용하라”고 촉구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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