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현장을 화해 무대로” 비판
‘사퇴 요구’로 충돌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직접 대면해 화해 분위기를 연출한 장소는 전날 밤 대형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수산물특화시장 현장이었다.
이날 서천 기온은 영하 6.3도에 눈바람이 매우 거세게 불었다. 한 위원장이 오후 1시께 화재 현장에 먼저 도착해 김태흠 충남지사 등과 함께 기다렸고, 약 40분 뒤 윤 대통령이 도착했다. 한 위원장은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여 인사했고, 윤 대통령은 악수를 나누며 한 위원장의 어깨를 한 손으로 툭 치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등은 약 2분 동안 권혁민 충남 소방본부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들은 뒤, 피해 현장을 돌며 복구·지원 대책 등을 점검하고 작업 인원을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상가 1층 로비에서 상인들을 만나 “명절을 앞두고 얼마나 상심이 크시냐. 여러분들이 바로 영업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신속하게 지원해 드리겠다”며 동행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즉각 지원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가능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현장을 둘러 본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대통령 전용열차로 함께 서울로 복귀했다. 윤 대통령이 “서울 가는 사람들은 열차로 같이 갑시다”라고 말하자, 한 위원장이 “자리 있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열차 안에서 두 사람은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 등이 동석한 가운데 마주 앉았다고 한다.
서울역에 도착한 한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열차에서 윤 대통령과) 여러 가지 민생 지원에 관한 얘기를 길게 주고 받았다”며 “(갈등설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다. 저희는 민생 지원에 관한 얘기를 서로 잘 나눴다. (윤 대통령이) 민생에 관한 지원책이라든가 건설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고, 제가 잘 들었다”고 했다.
이날 서천 방문을 두고, 윤 대통령이 재난 현장을 당정 화해의 무대로 활용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아무리 윤석열-한동훈 브로맨스 화해쇼가 급했다지만,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된 서천특화시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을 어떻게 배경으로 삼을 생각을 하느냐”고 논평했다. 그는 “국민의 아픔은 윤석열-한동훈 정치쇼를 위한 무대와 소품이 아니다”라고 했다. 보수 논객인 정규재 전 펜앤드마이크 주필은 페이스북에 “어디 장소가 없어서 재난 현장을 화해의 정치쇼로 덧칠한다는 말인가”라며 “그런 장소에서 두 사람이 만나면 언론들은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 같으냐”고 비판했다.
상인들은 윤 대통령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상인회 건물 2층에서 대기하던 상인들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인 임명수(66)씨는 “현금 지원이 절실한 우리 사정을 대통령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사진 찍고 가버렸다. 한 위원장이랑 갈등이 있으니까 국민 여론 때문에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온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은 김태흠 충남지사의 안내로 상가동 1층에서 피해 상인 대표들을 만나 요청사항을 듣고, 관계 장관들에게 복구 조치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태흠 지사는 상인들에게 “여러분들이 2층에 모여있는 걸 전혀 몰랐다. 1층에 있던 사람들이 피해 상인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