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강원도에 큰불이 났는데도 국회에 ‘붙잡혀’ 있었던 것을 두고, 여야가 5일 책임 공방을 벌였다. 자유한국당이 질의를 이유로 국가재난 대응 책임자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한국당은 “(심각하다는) 상황 보고가 없었다”며 책임을 청와대와 여권으로 돌렸다.
국회에 산불 발생 소식이 전달된 시각은 저녁 8시께로 알려졌다. 정 실장은 청와대 업무보고를 위해 오후부터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강원도 산불은 저녁 7시17분 발생했다. 운영위원장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저녁 9시25분께 회의가 재개된 직후, 정부의 위기대응 총책임자인 정 실장의 이석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홍 원내대표는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다. 속초 시내에서 민간인들을 대피까지 시키고 있다. (정 실장은) 위기대응의 총책임자다. (야당에 정 실장 이석에 대한) 양해를 구했더니 ‘안 된다’고 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사고가 생겼는데 대응해야 할 책임자를 우리가 이석시킬 수 없다고 국회에 잡아 놓는 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양석 한국당 의원은 “외교 참사는 더 큽니다”라고 맞받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회의에서 “저희도 정의용 안보실장을 빨리 보내드리고 싶다. 그러면 질문 순서를 조정하면 된다. 지금 여당 위원들이 (질문)하지 말고, 우리 야당 위원들이 질문하게 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홍 원내대표가 “위원님들 (컴퓨터) 모니터를 켜시고요, 속보를 한번 보십시오. 화재 3단계까지 발령이 됐고 전국적으로 번질 수도 있는 화재라고 합니다. 그래도 계속 질의하시고 그러시겠습니까”라고 따졌다. 이런 공방 속에 정작 정 실장은 화재 발생 3시간21분이 지난 밤 10시38분에야 국회를 떠날 수 있었다.
전날 정 실장의 ‘늦은 이석’을 두고 비판이 쏟아지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5일 “(화재의) 심각성에 대한 보고가 없어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고 반박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여당이) 상황의 심각성을 보고하고 이석에 대한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런 말씀이 없어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며 “(여당은) 7시45분 정회 때까지도 산불로 인한 이석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정 실장을) 이석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어 “밤 9시20분 속개 뒤에야 홍영표 원내대표가 ‘불이 났는데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저희는) 심각성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서너분이 질의를 하면 끝나기 때문에 길어야 30분이라고 생각했다. 저희로서는 유감”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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