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논란의 화살을 야당 쪽에 돌리며 ‘전선’을 분명히 했다. 사드 배치 이후 한-중 관계가 위태로워지고 경북 성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는 등 갈등이 이어지자, 야당이 사드를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하고 있다며 ‘야당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수세에 몰린 박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공세적인 자세로 전환하면서, 사드 문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사실 왜곡과 색깔론 논란도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더민주 초선의원 6명의 중국 방문을 강하게 비판하며 “안보문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가치관과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사드 배치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이런 북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황당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한다”고 비난했다. 김한정 더민주 의원이 지난 3일 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러시아와의 대북공조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취지로 한 발언을 앞뒤 자른 채 인용하며 ‘종북’ 색깔을 붙이려 한 것이다. 김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발언을 심히 왜곡해 북한 동조세력으로 매도하며 색깔론을 펼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또 “저는 매일같이 거친 항의과 비난을 받고 있지만 저를 대통령으로 선택해준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며 “부디 정치권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일에는 함께 협조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국가안보를 위한 ‘소명론’을 거듭 언급해 지지층을 재결집하는 등 사드를 빌미로 본격적인 ‘여론 갈라치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박 대통령이 정부의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기고 있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국회의원의 정상적인 외교활동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참견하고 갈등을 부추겨야 하는가”라며 “대통령께서 사실을 왜곡해서 야당 의원들의 활동을 중국에 동조한다든지, 북한과 맥락을 같이하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타당한가”라고 반문했다. 일찌감치 사드 배치 반대 당론을 정한 국민의당·정의당은 더 선명하게 각을 세웠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청와대가 나설 때 나서야지 지금 (중국을 향해) 극심한 비난을 하면 결국 중국 정부와 한판 하자는 선전포고로밖에 볼 수 없다”며 “사드 배치라는 ‘본질’에서 한-중 대결의 ‘지엽’으로 정국을 전환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사드 문제로 사면초가 상태가 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당에 초당적 협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쟁으로 유도하고 겁박하면서 오히려 국론분열에 앞장서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야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지상욱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더민주 초선의원 6명의 중국 방문을 “의원외교를 위장한 신중국사대주의”라며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행하겠다는 선서를 중국에 갖다 바친 이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이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300명이 아니라) 294명”이라고 주장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이들의 활동은 앞으로 국민과 역사가 엄중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정 하어영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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