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0일 오전 국방부에서 열린 민·군 합동조사단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서 윤종성 과학수사 분과장(육군 준장)이 ‘결정적 증거물’로 공개된 어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군, 최문순 의원 요구에 무기소개책자 제시 못해
“어뢰 설계도는 다른 경로로 입수” 해명 [한겨레21 2010.06.18 제815호]
“어뢰 설계도는 다른 경로로 입수” 해명 [한겨레21 2010.06.18 제815호]
6월10일 감사원이 밝힌 ‘천안함 침몰 사건 대응 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군은 초동 대처 미흡과 경계 소홀이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사고 발생 시각과 현장 보고 내용을 조작했다. 초계함이 침몰하고 장병 수십 명의 희생이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군 최고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바로 보고가 돼야 할 내용인데도 왜곡한 것이다. 거짓 사고 시각에 맞추기 위해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의 일부만 편집해 언론에 공개했다. 결국 국민을 속였다.
제출 거부하다가 의원실 방문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불신과 의혹을 부추긴다. 감사원의 감사 대상은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군의 대응 실태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5월20일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관한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발표는 모두 진실일까? 천안함 사고 대응 과정에서 조작과 왜곡을 한 이들과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발표한 이들은, 같은 군 수뇌부였다. 감사원의 감사를 계기로, 군 주도로 진행된 합조단의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 결과 발표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북쪽의 연어급 잠수함이 서해 쪽 공해를 ‘ㄷ’자로 수십km 우회해 침투에 성공한 뒤, 6노트의 속도로 운항 중인 천안함을 공해 3km 바깥에서 어뢰를 쏘아 침몰시키고 같은 경로로 도주했다는 합조단의 발표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는 두 가지였다. 사고 해역 주변에서 합조단의 발표 시점에 임박해 극적으로 건져올렸다는 어뢰 부품과 이것이 북한산임을 입증한다는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의 설계도였다.
<한겨레21>은 어뢰 부품에 대한 검증과 함께 무기소개책자의 존재 여부를 취재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팸플릿 혹은 카탈로그 형태의 무기소개책자는 없었다. 먼저 국방부 쪽에 확인을 요청했다. 합조단은 5월20일 “(건져올린 어뢰가)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하면서 도면을 확대해 공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무기소개책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국방부 공보실 쪽은 이에 대해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윤원식 공보과장은 “무기소개책자의 존재 여부와 구체적인 형태 등을 밝힐 경우 출처 및 입수 경로가 드러날 수 있어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시 군 기밀주의의 벽은 높았다.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특위에서 활동 중인 최문순 민주당 의원도 <한겨레21>과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최 의원은 6월11일 열릴 천안함 특위 2차 회의를 앞두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 자료를 군에 요청했다. 군은 “기밀이라 제출하지는 못하나 의원실을 방문해 설명하겠다”고 했다. 최 의원은 그때까지만 해도 군이 무기소개책자를 가지고 와서 비밀 유지를 전제로 열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자는 없었다. 6월9일 오후 최문순 의원실을 방문한 군 관계자들이 가져온,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와 관련한 자료는 서류 석 장이 전부였다. 서류상 회사, 북한 회사 맞는지도 불분명 한 장의 영문 서류에는 위쪽에 회사 명칭으로 보이는 ‘GXXXX PXXXX Associated Corporation’이 쓰여 있었고 합조단이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지목한 CHT-02D 어뢰의 제원, 그리고 사진이 몇 장 실려 있었다. 또 한 장의 서류는 합조단 발표 당시의 어뢰 설계도면,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공회의소 자료였다. 책자가 있는데도 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설명에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온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다음은 최 의원의 말을 토대로 재구성한 최 의원과 군 관계자들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합조단은 어뢰 부품과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된 설계 도면이 일치한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무기소개책자는 없나. =(영문 서류 한 장을 내밀며) 책자는 없고 이 자료가 전부다. -이 서류에는 회사 이름과 어뢰 제원, 사진밖에 없다. 이 회사가 북한과 관련이 있다거나, 이 어뢰가 북한이 생산해 수출하는 어뢰라는 정보가 확인되나. =이 서류에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확보한 다른 자료에 이 회사가 등장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공회의소 자료에 나오는 ‘ㅊㅅ합작주식회사’와 같은 회사다. -영문으로 쓰인 이 자료의 회사가 북한 상공회의소 자료에 등장하는 회사와 같은 회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어뢰의 부분 사진을 확대해보면 ‘전원’이라고 쓴 검정 글씨를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사진을 제시하며) 이 사진이 처음 보여준 자료의 사진을 확대한 사진이다. -왜 파란 글씨가 아니고 이번엔 검정 글씨인가. 부분을 크게 확대한 사진이 원본보다 더 선명할 수도 있나. =…. -합조단 설명 당시 어뢰 설계도가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돼 있다고 했다. 그럼 회사 이름과 어뢰 제원이 적힌 서류와 합조단이 설명 당시 공개한 설계도면은 같은 무기소개책자에서 나온 일부분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설계도면은 다른 경로로 입수했는데 구체적인 경로는 말할 수 없다. 설계도면의 출처는 어디인가 최 의원은 “요새는 조그만 전자제품의 소개책자도 두툼하지 않나. 북이 수출을 목적으로 제작한 무기소개책자라고 해서 뭔가 들고 와 설명할 줄 알았는데 종이 석 장을 가져왔다. 북과의 연관성에 대한 답변에서도 허점이 많아 되물으면 답변을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군 쪽의 설명대로라면 책자 형태의 ‘북한산 무기소개책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CHT-02D 어뢰 정보가 담긴 영문 서류와 어뢰의 설계도면, 그리고 북 상공회의소 자료의 출처는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5월20일 합조단이 설명한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설계도면”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뢰 설계도면의 의문점을 지속적으로 보도해온 인터넷매체 <민중의 소리>는 6월11일 “합조단이 천암함 특위 위원들에게 ‘4월 하순경 모 기관으로부터 북의 어뢰 설계도를 건네받았다’고 대면보고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어뢰 부품과 일치한다는 설계도면의 출처는 북한산 무기소개책자가 아니라 정보기관으로 추정되는 ‘모 기관’이 된다. 독자적인 검증 실험 결과 천안함 선체와 어뢰 부품에서 폭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이승헌 교수(미국 버지니아대)의 주장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뢰의 설계도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 또한 군이 자초한 일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겨레21>은 어뢰 부품에 대한 검증과 함께 무기소개책자의 존재 여부를 취재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팸플릿 혹은 카탈로그 형태의 무기소개책자는 없었다. 먼저 국방부 쪽에 확인을 요청했다. 합조단은 5월20일 “(건져올린 어뢰가)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하면서 도면을 확대해 공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무기소개책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국방부 공보실 쪽은 이에 대해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윤원식 공보과장은 “무기소개책자의 존재 여부와 구체적인 형태 등을 밝힐 경우 출처 및 입수 경로가 드러날 수 있어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시 군 기밀주의의 벽은 높았다.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특위에서 활동 중인 최문순 민주당 의원도 <한겨레21>과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최 의원은 6월11일 열릴 천안함 특위 2차 회의를 앞두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 자료를 군에 요청했다. 군은 “기밀이라 제출하지는 못하나 의원실을 방문해 설명하겠다”고 했다. 최 의원은 그때까지만 해도 군이 무기소개책자를 가지고 와서 비밀 유지를 전제로 열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자는 없었다. 6월9일 오후 최문순 의원실을 방문한 군 관계자들이 가져온,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와 관련한 자료는 서류 석 장이 전부였다. 서류상 회사, 북한 회사 맞는지도 불분명 한 장의 영문 서류에는 위쪽에 회사 명칭으로 보이는 ‘GXXXX PXXXX Associated Corporation’이 쓰여 있었고 합조단이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지목한 CHT-02D 어뢰의 제원, 그리고 사진이 몇 장 실려 있었다. 또 한 장의 서류는 합조단 발표 당시의 어뢰 설계도면,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공회의소 자료였다. 책자가 있는데도 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설명에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온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다음은 최 의원의 말을 토대로 재구성한 최 의원과 군 관계자들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합조단은 어뢰 부품과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된 설계 도면이 일치한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무기소개책자는 없나. =(영문 서류 한 장을 내밀며) 책자는 없고 이 자료가 전부다. -이 서류에는 회사 이름과 어뢰 제원, 사진밖에 없다. 이 회사가 북한과 관련이 있다거나, 이 어뢰가 북한이 생산해 수출하는 어뢰라는 정보가 확인되나. =이 서류에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확보한 다른 자료에 이 회사가 등장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공회의소 자료에 나오는 ‘ㅊㅅ합작주식회사’와 같은 회사다. -영문으로 쓰인 이 자료의 회사가 북한 상공회의소 자료에 등장하는 회사와 같은 회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어뢰의 부분 사진을 확대해보면 ‘전원’이라고 쓴 검정 글씨를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사진을 제시하며) 이 사진이 처음 보여준 자료의 사진을 확대한 사진이다. -왜 파란 글씨가 아니고 이번엔 검정 글씨인가. 부분을 크게 확대한 사진이 원본보다 더 선명할 수도 있나. =…. -합조단 설명 당시 어뢰 설계도가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돼 있다고 했다. 그럼 회사 이름과 어뢰 제원이 적힌 서류와 합조단이 설명 당시 공개한 설계도면은 같은 무기소개책자에서 나온 일부분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설계도면은 다른 경로로 입수했는데 구체적인 경로는 말할 수 없다. 설계도면의 출처는 어디인가 최 의원은 “요새는 조그만 전자제품의 소개책자도 두툼하지 않나. 북이 수출을 목적으로 제작한 무기소개책자라고 해서 뭔가 들고 와 설명할 줄 알았는데 종이 석 장을 가져왔다. 북과의 연관성에 대한 답변에서도 허점이 많아 되물으면 답변을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군 쪽의 설명대로라면 책자 형태의 ‘북한산 무기소개책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CHT-02D 어뢰 정보가 담긴 영문 서류와 어뢰의 설계도면, 그리고 북 상공회의소 자료의 출처는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5월20일 합조단이 설명한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설계도면”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뢰 설계도면의 의문점을 지속적으로 보도해온 인터넷매체 <민중의 소리>는 6월11일 “합조단이 천암함 특위 위원들에게 ‘4월 하순경 모 기관으로부터 북의 어뢰 설계도를 건네받았다’고 대면보고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어뢰 부품과 일치한다는 설계도면의 출처는 북한산 무기소개책자가 아니라 정보기관으로 추정되는 ‘모 기관’이 된다. 독자적인 검증 실험 결과 천안함 선체와 어뢰 부품에서 폭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이승헌 교수(미국 버지니아대)의 주장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뢰의 설계도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 또한 군이 자초한 일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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